2015년 11월 22일 <영축산 1081m> 경남 양산시 하북면.

 

 산행코스지산리마을버스주차장 - 비로암갈림길 - 집수조 - 전망대 -

             영축산정상 - 밧줄 - 임도 - 지산리마을버스주차장. 

산행시작 : 지산리마을버스 주차장 09시 22분.

산행종료 : 지산리마을버스 주차장 14시 09분.

(산행소요시간 : 4시간 47분 소요 / 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09 : 22  지산리 마을버스 주차장.

09 : 35  비로암 갈림길.

10 : 50  전망대.

11 : 35  영축산 정상.

12 : 36  밧줄.

14 : 09  지산리 마을버스 주차장 하산완료. 

 

09시 22분 : 지산리 마을 버스 주차장 도착. 

산행들머리는 영축상회라는 빛바랜 간판앞을 지나 마을길따라 300여미터가량 올라 간다,,

 

 

▲ 마을쉼터의 화단에 동백꽃이 낯선 산객에게 방긋.. 미소를 던진다.

 

 

 

 

 

▲ 미스 영축산 소나무. 

반야능선상의 미인송이 부끄러운듯,,, 다리를 꼬고 있다. 

 

 

 

 

 

▲ 속보이는 소나무..

 

 

 

 

 

 

 

10시 51분 : 전망대. 

 

 

 

▲ 암골미가 일품인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선경에 취해,, 잠시 황홀경에 빠져든다. 

 

 

▲ 장쾌한 함박등 능선이 한줄기 바람에 밀려온 운무에 가려

눈 깜짝 할 사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며. 신비감을 자아 낸다. 

 

 

 

 

 

▲ 올려다 보이는 영축산. 

 

 

▲ 촛대바위. 

 

 

▲ 촛대바위, 천년송,, 

억겁의 시간동안 풍화작용에 닳고 닳아 자연이 만든 촛대바위가

혼자는 외로워,, 어느날 바람에 실려온 씨앗하나 키워내니

이제는 소나무가 촛대바위보다 훨씬 커 버려서 어느새 노송이 되었다.. 

천년 바위와 노송 사이에 서니

광해군 때에 영의정까지 올랐던 정인홍(鄭仁弘)이가

어릴적에 지었다는 <탑과 소나무>라는 시가 생각 난다. 

 

 

▲ 정인홍(鄭仁弘, 조선시대 1535-1623)이 어렸을 때에..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이다. 

마침,, 감사(監事)가 와서 밤에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보니 과부집의 어린 아이였다. 

기특하게 여겨 불러서 묻기를 "네가 시를 지을 줄 아느냐"하니 인홍이 사양하였다. 

감사가 탑 옆에 있는 어린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그것을 제목으로 하고 운(韻)을 불러서 짓도록 하니

인홍이 운을 부르는 소리에 응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 탑과 소나무. 

단단고송 재탑서(短短孤松 在塔西),,,

키작은 외로운 소나무가 탑 서쪽에 서있네. 

탑고송하 불상제(塔高松下 不相齊),,,

탑이 높아 소나무가 더욱 낮아 보이는구나. 

막언금일 고송단(莫言今日 孤松短),,,

외로운 소나무가 너무 작다고 말하지 마라. 

송장타시 탑방저(松長他時 塔方低),,,

훗날 소나무가 자라면 탑이 도로 낮으리.

감사가 이 글을 보고 탄복하며 말하기를

 "장차 너는 반드시 귀하게 되고 이름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뜻이 지나치니 경계할지어다",,라고 했다고 한다.

 

 

▲ 후일 그는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크게 영달하여 광해군 때에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는 폐비(廢妃)의 논(論)을 일으키는 등 너무 과격하여

마침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참형되고 가산은 적몰(籍沒)당했다. 

 

 

 

 

 

▲ 외송능선의 삼형제바위. 

 

 

▲ 함박등 너머의 죽바위등이 구름에 싸여 있다. 

 

 

▲ 멀리 밀양의 명산 천황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 영축산 가는길. 

 

 

▲ 영남의 알프스 신불산도 구름에 가리우고. 

 

 

 

 

11시 35분 : 영축산 정상. 

영축산은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를 품은 산이다.

영축산이 우리의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계기가 통도사의 창건에서 비롯되었으며,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의 사람들은 이 산을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동일한 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영축산이라 이름지어 졌다. 

 

 

  

  

▲ 신불산과 신불평원.

신불 평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억새군락지이다. 

 

 

▲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지대다. 

앞쪽이 에베로릿지, 다음이 아리랑릿지. 멀리보이는 바위능선은 신불공룡 능선이다. 

 

 

▲ 다시 죽바위등 능선을 바라보며.. 

 

 

▲ 영축산 암봉에서 마음에 점찍기.. 

11월의 중순을 넘어 가는데 한낮의 기온은 아직도 초가을이다. 

 

 

 

▲ 철 모르는 진달래. 

 

 

 

 

 

 

 

 

 

 

 

 

 

 

14시 09분 : 지산리 하산완료. 

 

 

 

 

  

16시 38분 : 하산주를 파하고

지산라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의 통도사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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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건물은 성보 박물관이다..

 600여 점의 불교 회화를 보관 전시하고 있으며.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국내 최대의 사찰박물관이다. 

특히 불교 회화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풍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영취산 통도사 일주문, 

양쪽 기둥에는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 쓰여 있다. 

 

 

▲ 천왕문. 

 

 

 

 

 

▲ 불이문(不二門).

불이(不二)’란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의 다른 말이다. 

즉 부처와 중생, 나와 남,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나아가 생과 사도 둘이 아니라는 연기법(緣起法)의 진리를 말한다. 

불이문을 다른 이름으로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이 문을 왕래하는 이들이 진리를 깨닫고

잊었던 본성을 되찾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전각이다. 

 

 

 

해동의 이름난 명승지,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대국통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국내 제일 대가람(大伽藍)이다. 

 

 

 관음전. 

신라의 대국통 자장스님께서는 당나라에 건너가 수도를 하고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 그리고 대장경의 일부분을 받들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사리를 모실 절을 세우기로 하고 문수보살께 절을 세우기에

적당한 곳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밤 꿈에 훌륭하게 차려입은 동자가

나타나서 부처님 모실 곳을 일러주었다. 

 

 

  자장스님께서는 동국이 신라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나, 신라의 어느 곳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동쪽으로 날려 보냈더니 얼마 후 오리는 한 송이 칡꽃을 물고 돌아왔다. 

스님께서는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것이

부처님의 뜻임을 깨닫고 흰 눈이 쌓여 있는 한 겨울에 칡꽃을 찾아 나섰다. 

 

 

 며칠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양산에서 좀 더 들어가는 영축산에 이르러 보니 큰못이 있었다 

그 못 주변에 신기하게도 두 송이의 칡꽃이 피어있었다. 

 

 

 자장스님께서 인근의 경치를 살펴보니 송림이 울창하고

산봉우리들이 열을 지어 둘러쳐져 있었으며 검푸른 못물은 마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님은 세상에서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은

 다시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통도사>이다.

 

 

 대웅전,, 

삼보사찰은,,,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이며,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로 

이것은 불교의 요체인 불, 법, 승 삼보가각 사찰에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이특별히 강조되어 표현된 것이다. 

 

 

 

 

 

 

금강계단. 

영축산이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한다.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보광선원 출입문에 써 있는 글이다. 

풀이하자면,,,,,,"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부처님 진신사리탑.

불지종가인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 (646) 대국통 자장율사께서 창건.

이곳에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석가여래의 정골사리와친히 입으시던 가사를 봉안하고 

보름마다 계를 베풀어 전국 승니의 규율을 계율홍장(戒律弘揚)의근본도량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의 유명산에는 그에 따른 유명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사찰에 들릴때마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서 그런지..궁금 했었다..

바로 동전을 던지는 일이다..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는 곳,,

바르게 사는법을 스스로 수양하고 깨우치고 선을 행하면

지은 업(業)에 따라,, 언젠가는 복은 저절로 올텐데,, 

사람들이란,,,

의미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억지로라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고단한 삶을 위안 받으려 하는 속성을 지닌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다. 

 

 

 

 

 

 설법전. 

 

 

 설법전 내부. 

 

 

 

 

 

 통도사를 포근히 감싸안은 영축산 산그리메를 뒤로 하고 

부처님의 도량에서,,,"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능견난사(能見難思),, 깨달음의 숙제를 안고 

내 몸하나 쉴 곳이 있는 속세를 향해서 어둠이 내려 앉는 산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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