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1일(목).

무이산/수태산/향로봉 : 경남 고성군.

 

산행코스 : 문수암주차장-문수암-무이산-약사전-수태산-학동치-향로봉-신선대-낙서암-운흥사주차장.

산행시작 : 문수암주차장  10시 21분.

산행종료 : 운흥사주차장  15시 44분.

전체거리 : 약 10.52km.

전체시간 : 05시간 22분.

운동시간 : 05시간 00분.

휴식시간 : 00시간 23분.

 

10 : 21  문수암주차장  출발.

10 : 29  문수암.

10 : 40  무이산.

11 : 08  약사전.

11 : 46  수태산.

12 : 10  수태재.

13 : 02  학동치.

13 : 52  평평바위(백암산갈림길).

14 : 10  향로봉.

14 : 53  신선대.

15 : 09  낙서암.

15 : 36  운흥사.

15 : 44  운흥사주차장.

 

▲ 10시 16분 : 문수암주차장 도착.

오늘의 산행 컨셉(concept)은.. 삼산삼사(三山三寺)다..

 

첫째.. "무이산=문수암 문수보살"..

둘째.. "수태산=보현암 약사여래불"..

셋째.. "향로봉=호국의 천년고찰 운흥사"..

세개의 산과 사찰이 제각각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오늘 천년암자와 명산에서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 보자..

 

▲ 먼저... 올라야할 문수암과 무이산을 가늠해 보고..

 

▲ 덕장(김경진)회장님의 취임 첫달에 만차로 출발하심을 축하합니다.

 

▲ 10시 21분 : 문수암을 향해 출발..

이곳 문수암은 예전에 전두환 전대통령의 칩거 장소를 물색할 때 허문도가 자신의 고향인 이 곳 문수암을 추천했지만

경호상의 문제로 설악산 백담사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하는 곳이다.

 

▲ 10배 줌으로 당겨본 약사여래불..

 

▲ 청담대종사사리탑비.

청담스님은 진주사람으로 1902년생이다. 진주농고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후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했다.

1954년 조계종 초대 종무원장을 역임했다. 선승답지 않게 털털한 경상도 사투리와 작은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고은"이 소개한 일화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비구승단의 종권장악이 한동안 순조롭지 못할 때

청담스님과 함께 종로 4가의 "백운학 관상소"에 가서 장차 조계종단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어본 적도 있다.

그만큼 종단이 여기저기서 나타난 협잡에 에워싸여 부채가 늘어나고 종단 운영 자체의 난맥상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세속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앞길을 묻는 것은 몰라도 우리가 가서 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웃음거리가 아닐까 하고

따졌지만 청담스님의 대답은 당당한 것이었다.  돌멩이한테 물으면 어떻고 제석천(帝釋天)에 물으면 어떤가. 가보자.

제정신 핑 돈 사람이 뜻밖에 길일(吉日)을 택하기도 하는 법이 아닌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종권장악이 제대로 안되자 민간이 애용하는 관상에 찾아가 방안을 물어봤다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게 어떠랴?

돌멩이 한테 물으면 어떻고 제석에게 물으면 어떤가?.. 라고 당당해 했다는 일화는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 청담대종사사리탑.

 

▲ 오늘의 무이산 산행들머리로 정했던 무선리의 무선저수지가 보인다.. 화랑집행부의 판단하에 무선리를 통과하여

문수암주차장을 들머리로 변경한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무선리코스는 1시간가량 소요되는 급오름에 매우 힘든 코스다.

 

선(武仙)마을은 약 100년 전에 진보 이씨(李氏)가 입촌(入村)하여 마을 이름을 "무리산"이라고 불렀는데 1930년에

선동(仙洞)과 분동 되면서 "무선"마을로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시 29분 : 문수암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706년(성덕왕 5)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이 남해 보광산(普光山 : 지금의 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무선리의

민가에 묵게 되었다. 꿈속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 하였다.

날이 새자, 걸인을 따라 무이산으로 가서 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남대·북대·동대·서대는 웅장한 바가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中臺)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 때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이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고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었다.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은 의상은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며, 이 절에서 수도한 청담(靑潭)의 사리를 봉안하여 1973년에 세운 청담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 문수암 대웅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 문수보살이 사라졌다는 암굴이 있다..

 

▲ 자연이 빚어낸 문수보살상이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데.. 문수보살상이 맞다면... 불자가 아닌 내눈에 보여짐은 나는 착한 쪽인가 보다..ㅎㅎ~

 

▲ 다시 법당을 돌아 나오면 청담대선사사리탑과 마주하게 되고

 

▲ 무이산 등산로는.. 물품을 실어 올리는 모노레일 플랫폼을 지나서...

 

▲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10시 40분 : 무이산 정상의 산불초소..

 

▲ 한려수도.. 자란만과 사량도가 해무속에 졸고있다.

오늘 고성의 날씨는 흐리고 오전 한때 비.. 강수량은 -1mm/h.. 기온은 -1도~7도... 풍속은 3~4m/s이다..

그런데.. 다행히 비는 현재 소강상태다..

 

▲ 동북쪽... 산너머 어디쯤에 연화산이 있을 터인데.. 흐려서 감이 오지 않는다.

 

무이산(武夷山·545.6m)은 통영 미륵산, 남해금산과 더불어 남해안 3대 절경중 하나이며...

삼국 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 졌다. 한려수도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은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이곳의 명코스이며 바로 앞 자란만에는 사량도가 떠 있는데 점점이 박힌

조그만 섬들 사이로 멀리 욕지도까지 뚜렷하게 눈에 잡히는 산인데 오늘은 아쉽기만 하다.

 

▲ 적당히 습기 머금은 길은.. 먼지도 일지 않아 걷기에는 너무 좋다.

 

10시 54분 : 피톤치드가 왕성한 시간에.. 편백숲을 지나면..

 

▲ 조금전 버스로 지나갔던 문수암길에 내려서고..

 

▲ 임도 삼거리에서..

 

▲ 수태산 오름길을 버리고..

 

▲ 좌측 도로를 따라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을 알현하러 간다.

 

▲ 도로를 따라 6~7분 정도 진행하면 약사전이 보인다.. 여래불을 알현하고 주차장에서 오른쪽의 수태산으로 갈것이다.

 

▲ 해동제일약사도량.. 일주문..

참고로...한자로 도장(道場)이라고 쓰여 있지만 불도를 수행하는 사찰의 경내를 가리킬 때는 도량(道場)으로 읽는다.

 

▲ 보현암 약사전은.. 청담스님의 제자이시고 문수암 주지 스님이셨던 정천 스님께서

1983년에 창건하셔서 약사전과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신 기도도량이다. 

 

▲ 휴암당 정천 대사의 영정..

문수암 주지로 계시면서 보현암을 창건하셨고, 이어서 약사전과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셨다.

 

▲ 보현암 약사여래불.

바다를 등지고 있는 고성군 하일면 수태산에 있는 약사여래불은 동양 최대의 거대한 약사여래불이며..

문수암이 있는 상일면 무이산(武夷山)을 바라 보고 계신다.

 

▲ 여래불 뒤쪽으로 돌아가다가 올려다 뵈니.. 어마어마한 크기다..

 

▲ 티베트 사원의 경전을 돌리는 분위기다.

 

▲ 옥상위에 또다른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올라가 본다.

 

▲ 용의 등줄기 위로 지나온 무이산과 문수암이 보인다.

 

▲ 옥상에 올라서니 여래불과 눈높이가 같아 진다..

약사여래에 대한 민간신앙에 따르면 어떤 병은 그의 상을 만지거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기만 해도 치료된다고 한다.

 

▲ 무이산과 문수암..

 

바닷가 사찰의 불상은 대체로 망망대해를 향하는데 이 불상은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아픈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으로 좋게 해석하면 그만이지만, 내막은 좀 다르다고 한다.

불상 아래는 가파른 산자락이어서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지형이다. 부처의 등에 대고 기도를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이 바다를 등지고 세웠다고 한다......  -- 한국일보 발췌 --

 

수태산 아래의 보현암.. 약사여래볼은 보현암 소속이라고 한다.

 

▲ 향로봉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 오른쪽의 좌이산(左耳山)은 용의 왼쪽 귀에 해당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 약사여래불 알현을 마치고..

 

▲ 다시 수태산을 오르기 위해 일주문을 나선다.

 

수태산 들머리.. 향로봉 5.4km 멀다.

 

▲ 수태산 보현암..

 

▲ 보현암 조망바위에서... 수태산을 향해 15분정도 오르면..

 

▲ 오른쪽에 문수암을 조망할수 있는 넓은 마당바위를 만난다.

 

▲ 당겨본 문수암과 무이산.

 

▲ 길은 다시 착해지고..

 

▲ 봄이면 진달래 터널을 만들어주는 능선이다.

 

11시 36분 : 약사전 갈림길..

 

▲ 무슨용도로 쓰였던 건물인고?... 안쪽에 부엌하나에 온돌방 하나다..

 

▲ 수태산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우람한 방구돌 사이를 빠져 나가면..

 

11시 45분 : 척번정 갈림길..

수태산 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의 지명이 척번정리라 한다. 씻을 척(滌), 번뇌 번(煩), 정자 정(亭)자를 따서 지었는데..

보기에는 평평하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깨끗이 씻은 듯이 없어지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 11시 46분 : 수태산 정상.

 

▲ 수태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려수도 자란만..

고성에도 사량도의 지리산 등산로 못지않은 한국의 아름다운 등산로가 있다. “고성에 그런 등산로가 있었단 말인가?”하고

다들 놀라거나 궁금해 할지 몰라도 사실이다. 발아래 펼쳐진 한려수도의 바다 풍광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산행 내내 이런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래서 이 코스를 "한국의 아름다운 등산로"라 하는 것이다.

 

▲ 수태산 정상에서 약사여래불을 당겨 본다.

 

▲ 조망대에서..

 

▲ 가야할 향로봉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고.. 수태재에서부터는 능선이 벌목되어 벌거숭이다.

 

12시 09분 : 수태재..

 

 12시 11분 : 수태재에서... 민생고 해결의 맛점 시간..

 

 12시 34분 : 20여분간의 빠른 점찍기를 마치고... 나를 포함한 일부는 능선으로 고고하고. 일부는 임도를 따른다.

 

▲ 뒤돌아본 수태산 능선...

 

▲ 경남 고성군 상리면 동산마을..

이 아름다운 산하의 골골마다에는..우리들의 인생이 있고 사람사는 이야기가 배여 있다.

 

12시 43분 : 준.희님의 와룡지맥 415.2m봉..

와룡지맥(臥龍枝脈)은 백두대간 지리산 영신봉(1651.2m)에서 분기하는 낙남정맥이 삼신봉(1284m)을 거쳐 남강과 경남

남해안을 가르며 낙동강으로 이어가다.. 고성군 대곡산(무량산) 에 이르러 다시 4개(와룡, 통영, 화개, 무척)의 산줄기로

갈라진다. 대곡산(무량산)에서 시작되는 와룡지맥은  감치재, 수태산.. 향로봉.. 봉암산.. 민재봉.. 와룡산.. 천왕산.. 망산..

각산.. 영복항으로 이어지는 실거리 37.6km 인 산줄기이다.

 

▲ 415.2m봉에서 급격하게 고개를 떨구고..

 

▲ 임도와 눈높이를 낮춘다.. 지금쯤 능선으로 올라와야 되는데.. 학동치까지 임도를 고수 하겠단다..

 

▲ 고개를 살짝 낮추었던 능선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 준.희님의 354.8m 와룡지맥 표지.

 산악인 최남준님의 표지기는.. 2005년부터 표지기를 달기 시작했다. 명산이건 근교산이건 산깨나 탄 분이라면 산행 도중

'준·희, 그대와 가고 싶은 산'이라고 적힌 주황색 리본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준. 희'라고 쓴 표지기의 주인공 최남준씨는 부산 국제신문 취재산행팀의 안내를 맡았고.. 2001년 남한의 대간과 정맥을

모두 완주하였으며.. 그의 산사랑과 가족사랑은 지역 산악계에서도 훈훈한 사례로 회자된다.
리본에 적힌 '준·희'는 최 씨와 2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그의 부인 김숙희 여사의 이름의 끝글자 이니셜이다.

"월간 산" 2022년 4월호 기사를 보면... 지금 현재는 암으로부터 회복중이라고 한다...

 

▲ 이 바위에서 부터 354.8m봉은 ":학동치"까지 급내림으로 떨어지며.. 물기머금은 바위가 미끄럽다. 조심조심..

 

▲ 산복도로개설 공사로 잘려나간 절개지가 매우 가파르다.

 

13시 02분 : 학동치고개...

고성군 하일면과 상리면을 이어주는 도로다.

 

▲ 기억도 가물거리는 오래전에 화살표쪽으로 올라간 기억만은 생생하다... 지금도 그때의 길 흔적은 남아 있다.

 

▲ 임도를 따라 7~8분 가량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주등산로와 접속이 된다.

 

▲ 진행방향으로 내내 따라 다니는 좌이산은 작지만 예쁜 산으로 해마다 각 산악회에서 시산제 행사를 많이 하는 산이다.

 

13시 08분 : 우측의 주능선이.. 사막의 낙타처럼 등을 낮추어 준다.

 

▲ 향로봉 1.8km.. 많이도 줄였다... 하지만 여기서 부터 무명봉까지의 오름이 장난이 아니다..

 

▲ 힘든 급오름에 잠시 철탑속 세상을 엿보고 가자..

이제 곧.. 최대의 명절 "설날" 이 다가 온다.. 민초들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이어질 것이다.

 

▲ 쉬엄쉬엄 무명봉에 다다르고..

 

▲ 남북으로 관통하는 임도를 만난다.

 

▲ 임도를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수태산이 어느새 먼 발치로 까마득하게 멀어 졌다.

 

▲ 백암산 삼거리에 있는 평평바위 오름길도 만만치 않다..

 

▲ "산길이 힘들면 소처럼 걸어가라"..라는 말이 생각나서 우직하게 땅만보고 걷는데.. 커다란 방구돌이 쉬어 가라한다.

 

▲ 족적을 따라 내려 가니.. 적석산 쉼터바위 같은 곳이 나온다.

 

▲ 바로 위에가 마당바위다.

 

▲ 왔던길을 되돌아서 올라가니 국가지리정보원에도 등록되어 있는 "마당바위"다.

 

▲ 조망한번 쥑이는 곳인데.. 쩝쩝 이다..

 

▲ 오른쪽이 향로봉 길이지만... 평평바위를 경유하기위해 절벽과 한판 씨름이다.

 

▲ 수직절벽구간.. 차분하게 자세히 보면 길이 보인다..

 

13시 52분 : 평평바위..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백암산 능선길이다...

 

▲ 평평바위에서 바라본 향로봉과 상두바위..

 

▲ 당겨 본.. 상두바위..

 

▲ 향로봉으로..

 

▲ 평평바위에 내림길이 쉽지않다.

 

▲ 오른쪽으로 가면 와룡지맥길이다..

 

▲ 전에 없던 육각정자도 있고.. 그런데 건물이 가분수같이 아랫도리가 부실해 보인다.

 

14시 10분 : 향로봉 정상.

향로봉(579m)의 당초 이름은 와룡산이었다. 예부터 와룡산이란 이름은 둘이었다. 하나가 지금 향로봉이라 불리는 고성군

하이면에 있는 와룡산으로 산 밑에는 와룡동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고문헌에도 그렇게 기록돼 있다.

와룡산을 지칭할 때 사천 와룡산과 고성 와룡산으로 구분하여 불러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고성 와룡산이 향로봉으로

바뀌에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토지측량사업을 하면서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대정7년 3월30일 발행)에 발행한

축척5만분의1 지도에 사천 와룡산과 와룡동은 그대로 두고 고성 와룡산을 향로봉으로 표기해 버려 지금까지 향로봉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14시 30분 : 애향교(愛鄕橋)...

고성군 하이면의 "하이애향회"에서 자체기금과 노력으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애향심이 대단하다.

 

▲ 상두바위..

 

▲ 새바위(일명 : 까마귀 바위).

마치 돛단배의 돛대를 닮은 듯한 역삼각형 바위는 눈을 부릅뜬 사람의 얼굴 같가도 하다.

 

▲ 비로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 사천의 와룡산..

 

▲ 당겨본 운흥사 주차장.. 화랑의 애마가 보인다.

 

▲ 신선대의 명품송 신선송이다.

 

▲ 신선대 바위..

 

▲ 한폭의 산수화처럼 천길 단애에 걸린 노송의 품새가 당당하다...

 

▲ 낙서암..

 

▲ 낙서암(樂西庵) 으로..

용머리가 있던곳은 과거 일주문이 있던 곳인데... 세월앞에 주저 앉아버린 모양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주변에 보리수가 많이 자생한다. 보리수는 염주를 만드는 나무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

이기도 하여 보리수가 많이 자생하는 이곳은 정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용머리에 꽂아놓은 세월묵은 관솔에 훈훈한 미소가 번진다...

 

▲ 용머리 뿔이 자연 친화적이다...

 

▲ 낙서암은 낙서 도인이 수도하였다고 하는 곳인데,  현재는 버려진 절간처럼 적막강산이다. 조용히 돌아 선다..

 

▲ 풍경의 고리가 돌로 만든 고기다..

낙서암에서 나오는 물은 세어서(强)..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낙서암에서 내려가는 거친길을 조심조심 15분여를 내려가면..

▲ 천진암.. 단촐하고 고즈넉하다.

숙종 18년 응화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 다리를 건너면 운흥사 경내다.

 

▲ 그런데 운흥사라 하지 않고 이정표에는 화장실로 달아 놓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돌아서 운흥사로 간다.

 

▲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뒷간 같다... 뒷간을 지나 가면...

 

▲ 운흥사 범종루..

운흥사 장독대를 보기위해 위로 올라간다..

 

▲ 운흥사 선화당..

 

운흥사 대웅전..

운흥사(雲興寺)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 활동의 근거지였다.

사명대사가 승병 6,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웠고, 이순신 장군이 수륙양면 작전을 숙의하려 세 차례나 찾은 호국

사찰이다. 임란 때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들은 불태워졌고, 폐허가 된 운흥사는 방치되다가 1651년에 법성 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운흥사에는 "운흥사 괘불탱" 을 비롯한 문화재가 다수 있다.

괘불은 일제강점기 때 세번이나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실패한 문화재이다.

 

▲ 운흥사 영산전..

운흥사에서는 숙종 임금(재위: 1675~1720) 때부터 매년 음력 2월 8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영산제를 여는데,

이 날은 임진왜란 때 승병과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수의 승병이 전사한 날이다. 영산제에 사용하는 괘불탱 및

괘는 1730년에 의겸 스님과 그 문하생들이 그렸으며..  2001년 8월 3일 보물 제1317호로 지정되었다.

 

▲ 운흥사 장독대.. 드디어 찾았다.. 가장 한국적인 장독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운흥사 보제루 밑으로 나간다.

보제루(普濟樓) 글씨는..삼신산인 고산서(三神山人 杲山書).. 쌍계사 방장이신 고산(杲山) 스님의 글씨다.

 

▲ 보제루(普濟樓)는 법당 대신 설법을 하기 위하여 지은 누각으로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 운흥사 불이문(不二門)

불이문은 절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말한다. "불이"는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글씨는 고산(杲山) 스님의 글씨다.

 

15시 44분 : 운흥사 주차장.

 

▲ 트랭글을 정리하고..

 

17시 01분 : 고성군 하이면의 한식뷔페..

 

역시나 마음가는대로 보인다 하였고...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고 했다.

무언가 변화를 시도해 보고자 애쓰는 덕장 회장님의 마음이 보이고..

회장취임.. 첫 산행의 만차출발이 좋다.

 

한려수도의 풍광은 조금 아쉬웠지만

삼산삼사(三山三寺)의 서로 다른 세가지 독특한 만남이 어우러진.. 멋진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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