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4일(일).

천암산 : 경남 통영시.

 

산행코스 : 갈목마을정류장-전망바위-천암산-명정고개-북포루-세병관-명정-충렬사-주차장.

산행시작 : 갈목마을정류장  10시 36분.

산행종료 : 충렬사주차장  14시 55분.

전체거리 : 약 8.78km.

전체시간 : 05시간 18분.

운동시간 : 03시간 54분.

휴식시간 : 00시간 24분.

 

10 : 36  갈목마을정류장 출발.

10 : 39  전망데크.

11 : 08  전망바위.

11 : 45  돌탑.

11 : 55  237봉.

13 : 09  명정고개.

13 : 35  북포루.

14 : 08  세병관.

14 : 39  명정.

14 : 43  충렬사.

14 : 55  충렬사주차장.

 

▲ 10시 32분 : 갈목마을정류장 도착.

 

▲ 길건너의 갈목마을 입구...

 

▲ 천암산 들머리에서 산행채비를 하고...

 

▲ 10시 36분 : 천암산 1.9km를 향해 출발..

 

▲ 갈목마을 들머리에는 조경숲을 조성해 놓았다..

 

▲ 숲 안내도의 2번.. 힐링숲(대나무숲).

 

▲ 천암산 진행방향으로 왼쪽에 있는 숲 안내도의 5번.. 전망데크2.

 

▲ 2019년 3월 24일에 올랐던 제석봉 발암산이 마주보인다.. 발암산에서의 조망도 뛰어나다..

 

 천암산 진행방향으로 오른쪽에 있는 숲 안내도의 3번.. 전망데크1.

 

▲ 갈목마을 너머로.. 그림같은 한려해상의 "사량도" 가 길게 누워있다.

 

▲ 좁은 물길의 통영해협 너머로는 해안 일주도로가 아름다운 미륵도 다.

 

▲ 다시 주 등산로에 올라서서 천암산으로...

 

▲ 천암산 진행방향으로 좌측으로는 통영시 도산면의 봉화산이 자리하고 그 아래쪽에는 사량도로 가는 가오치항이 있다.

 

▲ 통영시 인평동 민양마을 포구에는...

배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모여 있고 방파제 역할을 하는 상항도를 잇는 아치형 다리가 보여서..

 

▲ 한껏 당겨 보니 운치가 있다. 차량통행은 불가한 도보용이다.

 

▲ 부엉이 바위에게 1..

마을에서 바라보면 부엉이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부엉이 바위에게 2..

 

▲ 부엉이 바위에게 3..

 

11시 36분 : 천암산..

천암산(天岩山)은.. 통영의 주산인 여항산에서 서쪽에 있어 통영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산이라고 한다.. "통영지"에

"통제영의 서쪽 5리 지점에 있어며 크고 작은 괴석이 많이 있어 농암(籠巖)이라 부른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 천암산에서 바라본 통영시..

한국의 나포리라 불리는 통영은 유..무인도 합해 570여 개의 섬(유인도 44개)을 거느리고 있다.

 

▲ 전원주택같은 아담싸이즈의 천암산 산불감시초소.

 

11시 45분 : 돌탑봉..

 

준.희 님의 238.6봉에서..

통영지맥(統營枝脈)이란?... 지리산 영신봉에서 부산쪽으로 가는 낙남정맥의 대곡산(大谷山.545m)에서남쪽으로 가지를쳐

고성반도 끝으로 가는 산줄기로 고성읍내를 관통하여 고성, 통영일대에서 가장높은 벽방산(碧芳山.651m)을 넘어 통영

시가지를 감싸안고 서쪽으로 돌아가 통영시 길목마을에서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0여 km되는 산줄기로 호미, 땅끝,

고흥, 여수지맥 처럼 반도의 끝으로 가는 능선이라 지맥의 이름도 지역명을 따서 통영지맥(統營枝脈) 이라 칭한다.

 

선두팀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팀도 착한길을 따라 조금더 진행하여..

 

통영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데크에서..

 

12시 14분 : 먹거리 정나눔을 한다.

 

옆동네도 같이.. 브라보..

 

이정표의 명정고개길을 따른다.

 

두번째 산불초소를 지나고..

 

13시 05분 : 약수암 갈림길에서.. 명정고개로.. 약수암쪽으로 직진하면 충렬사쪽이다.

 

약수암 갈림길에서 4~5분가량 진행하면.. 운동시설이 나오고..

 

▲ 곧 이어.. 명정고개에 내려선다.

 

명정고개 장승.. 옛날에는 원문 아래의 해안에서 나룻배로 북신만을 건너 여기 명정동 고갯길을 통하여 이 고장 옛

두룡포(지금의 통영항)로 왕래하였다. 그러다가 1604년(선조 37년) 통제영을 설치한 수십년 후에야 원문 안에 길을 내여

나루를 건너는 폐단을 없게 하였다.

이 장승은 육로를 개설하기 이전에 아주 오래된 유적으로 원래는 큰 돌탑과 함께 한 쌍이 세워져 있었다.

그후 1970년경 도로확장 공사 때 돌탑과 장승 1기가 매몰되었으며 1993년 장승 1기를 발굴했으나 머리부분이 손상되어

동일 모양의 장승을 제작하여 나란히 세웠다.

 

 길은 임도와 산길로 갈라지지만.. 어느곳으로 가던 위에서 만난다.

 

 산 주변에 주요 유적이 많아서인지.. 비상시에 대비하여 헬기장이 잘 관리되고 있다.

 

 산수국이 피는 4~5월에 이길을 걸어면 좋을듯 하다...

 

 원문항..

 

 북포루 갈림길..

여기서 명계수협쪽으로 직진하면 장골산 가는 길인데.. 장골산은 조망이 없어 통과하여 북포루로 향한다.

 

 길이 좋은 북포루 가는길...

 

 미륵산과 대숲..

 

 여기를 지나가는데.. 작년 여름에 휴가차 갔던 강원도 삼척의 "이끼폭포" 가는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난다.

 

 장골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예향의 도시답게... 숲속 도서관이 돋보인다.

 

 북포루가 자리한 여황산..

여황산은 중국의 고사에서 따 온 산 이름이고, 북포루는 통제영의 북측 경비 초소였다.

고대 중국 오(吳)나라의 한 임금이 호화로운 장식이 된 "여황"이라는 배를 무척 아꼈지만 전투 중 적국인 초(楚)나라에

넘어가고 말았다. 절치부심하던 오 왕은 다시 전쟁을 일으켜 기어코 여황을 되찾았다.

여황은 "호화롭게 장식한 배"라는 뜻도 있지만 제대로 진용을 갖춘 전함(戰艦)을 상징한다.

 

13시 35분 : 북포루..포루(舖樓)는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인데 이것을 포(舖)라고 한다.

통제영에는 당시 세병관을 중심으로 동쪽 동피랑에는 동포루, 서쪽 서피랑에는 서포루, 북쪽에는 북포루가 있었다.

남쪽은 바다이니 별도의 산상 초소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북포루와 마주하는.. 건너편의 미륵산과 통영시가지..

 

 북포루에서 바라보이는 한산도와 거제의 노자산과 가라산..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선조 26)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일본이 남해와 서해로 향하는 길목인 한산도

에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을 설치하였고, 이를 줄여서 "통제영(統制營)"이라 불렀던 것이 통영(統營)이

된 것이다.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오늘의 통영시를 이루었고, 청마, 윤이상, 박경리를 비롯한 이름난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북포루 투어를 마치고..

 

"세병관"으로 가기위해 이정표의 문화빌라쪽으로 하산이다.

 

중국 황산의 대숲과 비슷한 분위기다.

 

서피랑 공원의 서포루를 당겨 본다.."피랑"은 통영 말로 벼랑 혹은 비탈을 뜻한다.

동피랑마을은 대부분 10평 내외의 작은 주택들로 이루어진 대표적 달동네였다.

처음 터만 남은 동포루를 복원한 뒤 공원을 꾸밀려고 하다가 벽화마을로 재탄생되었다.

 

황단보도를 건너서 화살표의 세병관으로 간다.

 

덩이괭이밥..

 

"열기" 생선 말리기..

 

세병관 가는길...

 

황금측백나무..

 

세병관 매표소..

 

▲ 세병관의 외삼문인 망일루(望日樓)..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이 될때까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수군 본부였다.

임진왜란때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망일루는 광해군3년(1611년) 우치적(10대)통제사가 세웠으며 영조45년(1769년) 이국현(128대) 통제사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세웠다.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하며 통행금지를 알리는 큰종이 있어서 종루라고도 하였다.

소실된 것을 다시 2000년에 중건하였다.

 

▲ 수항루..

2층 누각으로 통영성 남문 밖에 위치 하였는데, 임진왜란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숙종 3년(1677년) 제58대 윤천뢰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수항루는 봄가을 군점(수조) 때 모여  왜군에게 항복받는 행사를 거행 하였다.

해안 매립으로 인해 선착장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려 198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 중건하였다.

 

▲ 좌청(左廳)..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는 건물로 대변좌청(待變)이라고도 하여 제 54대 신여철 통제사가 1689년에 "좌청"과 "우청" 으로

분청했다고 한다.

 

▲ 산성청(山城廳)...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 등이 근무했던 곳으로 숙종44년(1718년) 오중주(83대) 통제사 때 건립했으나 소실되었던 것을

발굴하여 유구와 문안에 의하여 최근에 건립하였다.

 

지과문(止戈門)은..

지과(止戈)는... 중지한다는 "지(止)"와, 창 "과(戈)"이다.

전쟁을 중지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두 글자를 합치면 "무(武)" 자가 되므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상반된 뜻이 있다.

글쓴이는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1908~1991) 선생이다.

 

14시 08분 : 세병관(洗兵館 국보 제305호).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한산도의 통제영을 이곳으로 이동해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에 규모를 크게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 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처 지은

것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각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홀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병이란 만하세병에서 따온 말로

우리말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라는 뜻이다. 크게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이다.

 

▲ 문화해설사가 설명을해 주고 있다.

 

▲ 세병관 내부 마루..

경회루. 진남관과 더불어 조선건축물 중 바닥이 가장 넓은 건축물이다.

 

▲ 세병관 뒷모습..

해설을 듣는 동안 나는 한바퀴 둘러 본다.

 

▲ 12공방으로 가는 문..

 

▲ 백화당(百和堂)은...

선조36년(1603년) 이경준(6대)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중국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인데

비장은 지방장관 및 중국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를 맡았고 지방장관이 임명했다.

 

▲ 공내헌(工內軒)은..공방을 관리하던 공감의 집무실을 말한다.

12공방은 제반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하던 곳으로 백화당 서쪽에 자리하며 조직적인 분업의 군영공방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1593년 이순신이 한산진에서 시작했으나 임란후 통제영이 창성하자 크게 번창하여 다양한 생활용품을 생산하였다.

 

▲ 공내헌 마루에 전시되어 있는 판옥선.

 

▲ 총방(총房)과 입자방(笠子房)..

총방(총房)은 말총을 엮어 망건.탕건.유건 등을 만들던 곳이며...

입자방(笠子房)은 흑립이나 벙거지... 삿갓... 패랭이 등을 만들던 곳이다.

 

▲ 화원방(畵員房)은...

각종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이다.

 

▲ 선자방은 단오절에 임금이 하사하던 부채를 제작하던 공방이다.

 

▲ 우물터..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돌기둥...

 

▲ 해설사님이 담아준 세병관 인증..

 

▲ 통제사 비군..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일종의 송덕비인데... 송덕비, 추사비, 거사비, 사적비, 불망비, 타루비, 유애비, 선정비 등이다.

 

▲ 내아..

 

▲ 운주당(運籌堂)은..

인조23(1645년) 이완(21대)통제사 때 경무당과 함께 창건하였다. 운주 (運籌 )는 운주유악지 중에서 나온 말로 군막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말이니 즉 통제사가 통제영에서 군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 운주당 주련..

만호생가춘기난(萬戶笙歌春氣暖)/ 집집마다 젓대소리에 봄기운 따뜻한데...

일정시화우성심(一旌詩話雨聲深)/ 한 깃발아래서 공부하는 소리 빗소리에 잠기네~..

 

▲ 통제사 집무의자..

 

▲ 경무당(景武堂)은...

인조 23년(1645년) 이완통제사 때 지은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로 이충무공의 뜻을 우러러 본다는 뜻에서 연유한 것이다.

 

▲ 209명의 역대 삼도수군통제사 명단.

 

▲ 내아(內衙)는...

통제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지방관청의 안채에 해당된다. 현재 안방, 대청, 부엌, 찬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병고(兵庫)는...

선조 37년(1604년) 제 6대 이경준 통제사 때 통제영 설치와 함께 세워졌다.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현재 대포, 창, 무기류를 전시하고 있다.

 

▲ 측면에서 본 세병관..

 

▲ 석인(石人)..

숙종 27년(1701년) 에 제 77대 류성추 통제사 때 세병관 뜰에 액막이로 만든 석인으로 추정되며.. 세병관 앞 장대석 석축

해체 과정에서 석인 5기가 발굴되어 현재의 위치에 설치 하였다.

 

▲ 오늘 처음으로 단독 출연을 해본다..

 

▲ 신궁의 솜씨로 적장의 심장을 향해...

 

▲ 충렬사주차장을 지나가며.. 버스를 확인하고.. "명정"과 "충렬사"를 보고 돌아올 것이다.

 

▲ 충렬사 광장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마주한 "명정"을 보려고 건너 간다.. 화살표의 열린문으로 들어 간다.

 

14시 39분 : 명정(明井:경상남도의 기념물 제273호)..

통영시 명정동에 위치한 통영 충렬사(사적 제 236호) 아래의 2기의 우물을 일컫는다. 

위쪽 샘을 일정(日井), 아래쪽 샘을 월정(月井)이라 불렀다고하며 이를 합쳐 "명정(明井)"이라 일컫는다. 일정의 물은

이(李) 충무공의 향사에 이용하고 월정의 물은 일반 민가에서 사용했다고 하며, 1670년 제 51대 김 경(金鏡) 통제사 때

이 우물을 팠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처음에는 우물을 하나만 팠더니 물이 탁하고 수량이 적어 하나 더 팠더니 비로소 물이

맑고 수량(水量)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의 기록에 명정리(明井里), 명정동(明井洞) 등 이 우물과 관련한 기록

이 나타나고 있어 최초 우물의 설치는 더 이전으로 추정되며 대대로 이 샘에서 솟아나는 물로서 충렬사의 제향에 사용하고

있는 신성한 우물로 취급받고 있다. 문학적 공간으로서 명정을 살펴보면,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에서도 명정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다.

 

▲ 명정을 나와서..

 

▲ 충렬사로...

 

▲ 통영 충렬(사적 제236호)는

이충무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

1606년(선조 39)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세웠으며, 1663년(현종 4) 사액(賜額)되었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 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 매표소 통과..

 

▲ 강한루(江漢樓)..

강한(江漢)은 군사요충이며 장강(長江 양자강)과 한수(漢水)가 만나는 곳으로, 이름난 중국 호북성의 경승지라고 한다.

1840년에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이, 여기 경남 통영시 통제영 내에 누각을 지을 때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충무공의 위업을 강한과 관련된 고사에 연관 지어 강한루(江漢樓)라 명명했다.

현 누각은 전형적인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 솟을 삼문인 내삼문(內三門)...

안으로 들어가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올리는 정당(正堂)이다.

 

▲ 충무공의 영정.. 경건히 묵념을 올리고 조용히 돌아 선다.

 

▲ 영정의 좌측 병풍..

 

▲ 영정의 우측 병풍..

 

▲ 충렬사 비각...

 

▲ 들어 올때의 강한루가 나갈때는 영모문이다...

 

▲ 충렬사 동백나무(기념물 재 74호)...

 

▲ 충렬사 홍살문...

 

▲ 충렬사 담장을 따라서 주차장 가는길..

 

14시 55분 : 충렬사 주차장..

 

 

▲ 감자탕...

 

▲ 소맥.. 1대1.. 칵테일전문가의 솜씨다.

산행 잘 하고 볼것 다보고.. 먹고 마시고.. 기분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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