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15일

남산 마애불길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행코스 : 상서장주차장 - 부처골할매부처바위 - 옥룡암탑골마애조상군 - 보리사석불좌상 - 일천바위 - 금오정전망대

늠비봉5층석탑 - 부흥사 - 해목령 - 상서장주차장 산행완료.

산행시작 : 상서장주차장 출발 08시 58분.

산행종료 상서장주차장 도착 13시 39분.

소요시간 : 약 11.03km / 4시간 41분 소요(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8 : 58 남산 서장주차장 출발.

09 : 07 해맞이마을.

09 : 26 불곡마애여래좌상(감실할매부처).

09 : 56 옥룡암탑골마애조상군.

10 : 30 보리사석불좌상.

11 : 15 일천바위.

11 : 52 금오정전망대.

12 : 25 늠비봉5층석탑.

12 : 34 부흥사.

12 : 48 해목령.

13 : 39 상서장주차장 산행완료.

 

08시 58분 : 경주 남산 상서장주차장.

 

▲ 최치원의 시비.

범해(泛海) 시는 최치원 선생이 28세 때 당나라 생활을 정리하고 신라로 돌아오면서 항해 도중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아득한 대해(大海)에 배를 띄우니 속세에서의 욕망이 덧없이 느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상서장(上書莊).

상서장은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선생께서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진성여왕 팔년(894) 갑인 이월에 구급시무책 십여조를 국왕에게 올린(上書)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상서장이라 불러 왔다. 이곳에는 영정각(영당)을 비롯하여 숭보당, 추원문, 화수정, 비각, 삼간문등이 있으며

시조묘(始祖廟)인 영당에서 매년 양 4월 16일에 경주 고운최치원 유적보존회에서 향사하고 있다.

 

▲ 고운대(孤雲臺)...앞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지은 마을이름... 해맞이마을의 안내석... 최햇빛선생은 한글학자이다.

 

▲ 불곡마애여래좌상(일명..할매부처) 이정목... 뒤에보이는 마을이 "해맞이마을" 이고.. "동남산가는길" 표시를 따른다.

 

▲ 노란민들레... 유럽이 원산지이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전지역에 귀화식물로 자리매김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한 민들레이야기~.. 옛날 노아의 홍수 때 삽시간에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모든게 달아났는데

민들레만은 발(뿌리)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 갔다고 한다.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린 민들레의

마지막 구원 기도를 하나님이 가엾게 여겨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인가.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이다.

 

▲ 해맞이마을의 사슴농장도 있고..

 

▲ 마을이 끝나는 지점의 노송들 사이로 깔려있는 야자매트를 따라...

 

▲ "밉게 보면 잡초 아닌 것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라 한적한 등산로에 곱게 핀 철쭉과 인사를 나누며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서면...

 

▲ 길위의 이정표는 100m 아래로 내려가라 하고...

 

▲ 산죽사이로 데크계단을 만난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 불곡마애여래좌상을 자칫 지나치게 된다... 이정표는 데크 중간지점의 산죽에 있다..

 

09시 26분 : 내가 경주 남산을 두번째 발걸음을 하게된 이유가 감실할매부처님(불곡마애여래좌상)을 보고자 함이다.

 

▲ 동네주민들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할매부처라고 부른다...

학술적 명칭인 불곡마애여래좌상(보물198호) 보다... 얼마나 정감있는 이름인가..

 

▲ 우리가 보통 보아온 부처님상.. 근엄하거나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다. 어린손자의 응석을 받아주던 할매의

모습도 보이고.. 다소곳 하고 부끄럼 많던 고향동네 처녀의 모습도 보인다.

 

▲ 인자하고 다소곳한 저모습에서 친근하고 친숙함이 느껴진다....

항상 그늘 속에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아래만 보는데 동지가 되면 햇살이 얼굴을 비친다고 한다.

 

▲ 그 옛날... 단단한 화강암 속에서 바위를 쪼아 바위속에 숨어 있는 불상의 모습을 찾아낸 신라사람들의 지혜에 감복

하며.. 보고 또보고 한참을 머무는데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스틱으로 데크계단을 찍는 소리가 목탁소리처럼 들린다...

무교인 내가 어슬픈 합장자세를 취하며... 할매요~...우짜든동 우리 가족들 건강하게만 해주이소..하며 자리를 뜬다.

 

 

▲ 다시 산죽을 헤치고 나와.. 내려가는데... 사진작가인듯한 사람이 대포카메라를 울러메고 올라온다.

 

▲ 도로를 따라 4~5분 진행하면...

 

▲ 경주시 배반동의 옥룡암 가는 이정표를 따른다.

 

▲ 옥룡암 요사채인 삼소헌(三笑軒)...

보기에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지만 삼소헌은...독립투사요.. 민족적 저항시인이었던 이육사(1904~1944)선생이

일제강점기때 옥고를 치루고 나온후 석달간 머문 곳이다.

 

09시 53분 : 옥룡암 삼층석탑.

 

▲ 옥룡암 대웅전...대한불교 정토종 소속이다.

 

 

▲ 부처바위(보물 제201호) 전면... 양쪽 두탑의 사이에 석가여래상... 부처님 머리 위에 천개(天蓋)가 새겨져 있다.

천개(天蓋)는 원래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한 우산에서 출발하여 귀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불보살상의

머리 위나 사원의 천장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변해 왔다.

 

▲ 부처바위 좌측면은 화려한 극락세계를 그렸고 극락 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여래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 부처바위 우측면은 여래상과 비천상.

 

▲ 삼층석탑.

 

▲ 석조여래입상과.. 삼존불.

 

▲ 삼존불.

 

▲ 석조여래입상.. 자연석위에 발을 다듬어 그 위에 몸체를 세웠다.

 

▲ 스님상...

 

옥룡암 안양교를 건너, 다음 목적지인 보리사 가는길을 찾는다...

 

옥룡암 안양교에서 3~4분정도 내려와서 미륵곡석조여래좌상 방면으로..

 

▲ 옥룡암에서 샛길로 빠져나오면 다시 도로와 만난다.

 

▲ 봄농사를 준비하는 길을 따라...

 

▲ 5~6분 진행하면 경북 산림환경연구원의 경계 철조망에 보리사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동남산 가는길의 안내는 여기까지다.

 

▲ 보리사 가는길 중간에 차단봉이 있고.. 오후 5시 이후에는 "개조심" 하라는 시무시무한 글귀가 그슬린다.

 

10시 29분 : 보리사 전경...

 

 

▲ 광배석 뒤에도 여래상이 돋을 새김이 있다..

 

▲ 보리사 전경...

 

▲ 겹벚꽃(왕벚꽃).

 

▲ 겹황매화(죽단화)...  꽃말은 "숭고", "기다림", "고귀" 이다.

 

▲ 보리사 경내를 내려와서 "보리사마애석불"로 간다.

 

▲ 옛사람들의 바위 자르기 흔적.. 나무를 박고 물에 불리면 나무가 부풀려 지면서 바위가 갈라지는 방식이다.

 

 

▲ 마애석불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많이 다니지 않은듯 하다... 그러나 족적은 뚜렷하다...

 

10시 53분 : 마애석불에서 약10여분 치고 오르면 옥룡암에서 올라오는 일천바위 주능선과 만난다.

 

일천바위로 가는 주능선에는 "산철쭉"이 유난히도 곱다.

 

<연달래 = 철쭉>.. 같은 철쭉인데.. 꽃빛깔이 아주 연한 분홍빛으로 흰 빛깔에 가깝다.

그래서 남부지방에서는 색이 연한  진달래란 뜻으로 '연달래'라고 부른다... 또한.. 진달래꽃이 지고나면

연이어서 핀다고 하여 '연달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 일천바위가 가까워오는지 바위들이 나타나고... 바위틈새가.. 나같이 착한 사람만 지나갈수 있는 폭이다...

 

11시 15분 : 일천바위(마왕바위)... 올라갈수 있나.. 주위를 살피니..

 

얹힌바위 밑으로 다닌 흔적이 있다.  오리걸음으로 지나갈수가 있다.

 

그런데.. 올라 갈수가 없다.

 

 나갈때 보니...얹힌바위의 생김이 고약하다.. 마왕바위다. 험상궂은 바위 하나가 큰 바위 사이에 끼어 있다.

아득한 옛날 엄청난 비가 와서 주변이 모두 물에 떠내려 갈때 걸린 마왕의 머리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시 나와서.. 일천바위(一千巖)에 올라가 본다.. 조망이 시원하다... 명칭의 유래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남아 있다.

아득한 옛날 엄청난 비가 와서 주변으로는 모두 물에 잠기고 이 봉우리만 물에 잠기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봉우리로 기어올라 바위를 의지하였는데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천명이 되었다.

그래서 이 곳이‘일천바위’라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뻥이 너무 쎄다.. 대충 백명은 설수 있겠다.. "일백바위" 다.

 

주변을 돌아보고... 리모컨셀프촬영을 하려는데 두런두런.. 젊은사람들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기다리자..

 

조금있으니 국립공원제복을 입은 청년 두명이 무언가 표시판을 들고 올라온다...

"직원"... 아저씨.. 여기가 일천바위 맞나요?.. 나에게 도로 묻는다..

""... 일천바위 맞아요... 그런데 무슨 표시할려고 왔나요?...

"직원"... 예~.. 일천바위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설치할려고 하는데 아저씨 내려오세요~...한다..

""... 이런 정도는 위험하지도 않는데.. 무슨 표지요.. 그것 표시한다고 사람들이 안올라 오나요?.. 다 올라와요.. ㅎㅎ

"직원"... 그래도 미끄러워서 위험합니다...

""... 알았고요.. 이왕 올라 왔으니 여기 와서 인증샷이나 해줘요.. 하니.. 젊은 직원의 성격이 좋다..

"직원"... 예~ 올라 갈테니 기다리세요...한다.

 

올라 와서는...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내리 석장을 찍어 준다.. 고맙고요... 수고하세요..

 

제비꽃... 꽃말은 "수줍은 사랑' 이다.

 

11시 42분 : 남산순환임도에 올라 선다..

 

오늘의 목적은 금오봉 정상이 아니라 늠비봉 5층석탑을 가려 한다. 일단.. 방향은 금오봉쪽으로...

 

일천바위에서 만난 국립공원 직원이 타고 온 차량이다..

그런데... 앞쪽에 사륜구동이 미끄러운지 뒤로 빽을 하고 있다.

 

트림블이다... 아마도 GPS측량을 하기 위함인듯 하다..

 

길이 미끄러워 여기서 뒤로 밀린 자국이다.. 뒤로 후진후에.. 쌩~하고 올라 간다..

 

11시 47분 : 오늘의 정상은 여기까지다.. 금오정으로 우회하여 하산이다..

 

금오정전망대 가는길..

 

금오정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포석정 코스로 올라오는 모양이다..

 

여기서도 셀프촬영은 접고... 중년부부에게 부탁...

 

▲ 포석곡 큰늠비절터...탑신과 옥개석 등 석조 유물들의 망실과 훼손을 막기 위해 받침대를 설치하고 정리해 두었다.

 

12시 24분 : 늠비봉 오층석탑.

 

해무리가 멋지다.

 

남산 금오봉을 배경으로...5층석탐을 뒤로하고 부흥사로 이동한다..

 

12시 34분 : 부흥사...

벤치가 있는 사찰내 쉼터에 두명의 여스님이 염주처럼 반들반들한 삭발머리를 맞대고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다.

부흥사의 여스님에게 인생의 길이 아닌 해목령으로 가는 산꾼의 길을 묻는다.. 한데...설명은 열심히 해주시는데 아니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어서... 스님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능선으로 무조건 치고 오른다...

누가 아는가...혹시나 기가 막힌 국보급 문화재라도 발견하게 될런지...ㅎㅎ

 

▲ 12시 41분 : 역시나 인생길은 한치 앞도 모르지만... 산꾼의 길은 산꾼이 안다...

약 5~6분 희미한 능선길을 따라가니 하산길 임도와 만난다... 순간의 판단이 약 1시간 이상을 앞당긴것 같다.

 

12시 48분 : 해목령... 포석정으로 가는길이다.

 

데크 쉼터...

 

포석정이 있는 마을... 저기도 조만간 가보아야 할 곳이다... 코스는 이미 정해 두었다..

 

상서장으로 내려가는길에 주중인데도.. 각개전투하시는 아자씨 두사람과 아줌씨 두사람도 심심찮게 만난다.

 

13시 29분 : 여기는 목소리에 디지털 안내글씨도 나온다.

 

매화말발도리...

 

상서장.. 최치원 전시관.

 

13시 39분 : 상서장주차장 산행완료..

 

최치원 고운대..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진성여왕 팔년(894) 갑인 이월에 구급시무책 십여조를 왕에게 올리고 이곳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나라의 부름을

받지 못하자 표연히 신라를 떠났다고 한다.

 

경주의 남산은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 이라고 하는 것이다.

보물 12점, 사적 14개, 중요민속자료, 지방유형문화재, 지방기념물, 문화재자료 등등이 산적해 있다.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은 장창골로 94개이며, 남산 전체로 따지면 694개에 이른다.

수많은 골짜기 중 어디로 올라가든 유적과 유물을 만날 수 있는 남산에서의 두번째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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