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7월 10일 청량산(870m) : 경북 봉화군 명호면.
산행코스 : 청량사 버스회차장 도착 - 청량사 - 김생굴 - 자소봉 - 여적봉 - 자란봉(점심) -
하늘다리 - 선학봉 - 안부 - 두들마을 - 청량폭포 - 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청량사 버스회차장 09시 46분.
하산완료 : 하청량마을 주차장 13시 37분.
(4시간 9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30 성서홈플러스 출발
09 : 46 청량사 들머리 도착.
12 : 15 청량사.
12 : 20 김생굴.
12 : 31 자소봉.
12 : 38 탁필봉.
13 : 35 여적봉.
13 : 52 뒤실고개.
14 : 05 자란봉(점심).
14 : 31 하늘다리.
16 : 17 두들마을.
13 : 37 청량폭포.
하산주후,,안동시 월영교 트레킹.
16 : 52 월영교 주차장.
17 : 54 법흥교 트레킹 완료.
▲ 09시 46분 : 청량산 들머리.
▲ 청량산 청량사 일주문 앞에서 단체 인증샷.
▲ 34도의 대구를 탈출하여 맑고 서늘한산...청량산(淸凉山)에 들어..
"더위야 물렀거라"~~ 홧팅소리가 청량골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 청량사 일주문.
▲ 청량사 오름길의 경사길을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도 저마다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짓누르는 베낭을 메고..한발한발 정상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수행하는자의 모습이다.
▲ 정갈스런 구도자의 길..
▲ 안심당.
청량사 입구의 찻집..
▲ 사찰의 그윽한 차향을 맡으며..
▲ 뜨겁게 달구어진 급경사 시멘트 도로를 숨막히게 올라서면 범종루아래 쉼터가 있고
▲ 목마른자에게 자연이 주는 무한 보시의 달고 시원한 물한잔을 마시고...
▲ 고개를 들어보니 또 하나의 청량사 명물로 자리잡은 5층석탑이 올려다 보인다.
▲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5층석탑,, 그러나 아쉽다..
불교도는 아니지만,,불심가득한 석수의 손으로 한땀한땀 정성 담긴
정으로 쪼아서 만든 탑이 아니라..너무나 기계적인.. 매끈(?)함에 아쉽다.
▲ 청량사 요사채.
▲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
▲ 청량사 5층석탑과 삼각우총(三角牛塚),,, 소나무..
소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옛날 청량산 아래 마을에
<남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 뿔이 세 개나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이 송아지는 자람도 빨라서 몇달 만에 낙타만큼 크게 자라났다.
이 송아지는 힘은 셌지만, 성격이 사나웠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원효스님께서 이 송아지를 절집으로 데려와
무거운 짐을 산 위로 오르는 데에 썼다고 한다.
그러자 송아지는 애초의 사나운 성격을 잊은 듯
양순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잘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소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절집 사람들은 소를 정성껏 묻어주고 왕생을 빌어 주었다.
얼마 뒤 소를 묻어준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라나서
소의 머리에 뿔이 세 개 나있던 것처럼 세 갈래로
가지가 갈라지는 모양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위 사진의 소나무이다.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고도 한다.
▲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닮은것 같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연화봉아래 유리보전(琉璃寶殿).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지은 절이다.
청량산에는 연대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던 곳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 태자의 신분으로..
생, 노, 병, 사의 비밀을 풀기위한 구세주의 고뇌일까...
▲ 산신각...
▲ 청량사는 최근 '선덕여왕'과 '워낭소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에 쫓긴 천명공주가 김춘추를 낳고
국선 문노를 찾아나서는 장면이 이곳을 무대로 촬영되었다.
산세가 워낙 수려한 데다 산사의 정갈함과 전각들의 날렵한 배치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일까..더 이상 청량사에서 산사의 고즈넉함을 바라는 것은
푸념 섞인 바람일 뿐이다.
▲ 스님들의 수행처.
차 한상..정갈하고 단아하다.
▲ 안심당 찻집뒤의 텃밭에 보살님이 있어..당겨보니...
▲ 꽃을 심는 보살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선명하다.
▲ 청량사 산문을 나서며..
▲ 오른쪽부터 자소봉, 가운데 탁필봉과 왼쪽의 여적봉..
▲ 연화봉과 향로봉.. 마치..연화대 아래에 향로에 촛불을 켠듯하다.
▲ 10시 43분 : 김생굴(金生窟).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서예가 김생(金生, 711~?)이 여기 절벽밑에 정자를 짓고
10여년 동안 글씨공부를 하였다는 동굴이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공부를 하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양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인
'김생필법(金生筆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서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海東書學)의 종조(宗祖)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 김생폭포(金生瀑布).
김생이 글씨공부를 하면서 붓을 씻었다고 하는 곳이다.
『김생(金生) 711(성덕왕 10)~791(원성왕 7).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로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해 예서ㆍ행서ㆍ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안동 문필산(文筆山), 경주 경일봉(擎日峰) 석굴(石窟) 같은 곳에서
글씨를 힘써 공부하고, 충주 북진애(北津崖)에 있는 절에서
중이 되어 두타행(頭陀行)을 닦았다.
고려 사신 홍관(洪灌)이 송(宋)의 변경(汴京)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의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왕희지(王羲之)에 비길 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
그뒤부터 중국 사신들은 김생의 필적을 매우 귀하게 여겨 얻어갔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미수기언 眉叟記言〉에
문필산ㆍ김생굴(金生窟)ㆍ김생사(金生寺) 등 그와 관련된 풍수유적이 전한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 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 海東名蹟〉·〈대동서법 大東書法〉에도 몇 점의 글씨가 실려 있다.
이밖에도
〈백률사석당기 栢栗寺石幢記〉·〈백월서운탑비 白月栖雲塔碑〉가 있다.』
참고로
신품사현(神品四賢)은 신라의 김생(金生), 고려의 유신(柳伸)ㆍ탄연(坦然)ㆍ최우(崔瑀)를 말한다.
▲ 김생암터에 세그루 나무가 묘한 형태를 하고 있다.
유(儒), 불(佛), 선(仙)이 셋인듯 하지만,,, 하나요,,
즉, 모든 종교의 진리(眞理)가 다른듯 하지만,, 결국은 하나 인것을..
합일(合一)임을 자연이 가르쳐 준다.,
김생(金生)과 청량봉녀(淸凉縫女)의 설화.
『김생이 경일봉 아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에 전념한 지 9년 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였다.
그 때 한 젋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길쌈 솜씨와 글씨 솜씨를
겨루어 보자고 제의하였다. 그 처녀는 바로 청량봉녀(淸凉縫女)였다.
김생은 처녀의 제의를 수락하여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윽고 불을 켠 뒤 비교해 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 하였는데,
김생의 글씨는 그만큼 고르지 못하였다.
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이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
을 채운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 한다.』
이 설화를 읽어 보면 마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
너는 글씨를 쓰거라 나는 떡을 썰 테니..."하는이야기와 비슷하다.
▲청량산 육육봉.
청량산은 옛부터 불교의 흔적이 산 전체에 남아 있던 곳이다.
이러다 보니 청량산의 봉우리들도 그 명칭이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과 같이 불교식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544년(중종 39) 당시 풍기군수이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찾아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일부 고치고 새로 짓기도 하였는데
그 명칭이 지금의 열두 봉우리의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는 주자가 여산(廬山)을 명명한 전례에 따라 주세붕이 청량산을 명명한 것이다
청량산가(淸凉山歌) -- 퇴계 이황 --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하노라...
이후 퇴계는 주세붕이 명명한 열두 봉을 인정하면서
이를 '청량산 육육봉' 이라 부르며 주자의 중국 무이산 육육봉과 연결시켜
청량산을 조선의 무이산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청량산은 불가의 산에서 유가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 솔나리..
희귀 식물이라고 하는데 정말 행운인것 같다..
솔나리는 깊은 산속 양지바른 곳에 자랄 뿐만 아니라
개체수가 적어서 희귀종으로 분류됨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꽃이다.
모든 나리 속 식물들이 긴 형태의 큰 잎을 갖고 있으나
솔나리의 잎은 소나무 잎처럼 좁고 가늘다.그래서 솔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꽃 색과 잎모양만으로도 다른 나리꽃 식물과는확연히 구별되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 자소봉.
▲ 탁필봉.
▲ 하늘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 규모는 작지만..중국 장가계 천자산에서 본.. 영화 <아바타> 촬영지 같다.
▲ 뒤실고개로 내려가는 급내림 계단.
▲ 뒤실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청량사로가는 갈림길이고 똑바로 직진하면.....
▲ 12시 35분 : 하늘다리.
▲ 두들마을 내림길에..같은 이름의 산악회가 있기에 반가움에 담아본다...
그런데,, 지역 표시가 없다..
▲ 13시 16분 : 두들마을.
▲ 이곳 청량산의 암석은 변성암류와 퇴적암류로 되어 있는데
퇴적암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삼일전에 내린비로
가뭄에 시달리던 경북북부지역의 생육에도 활력을 찾고 생동감이 넘친다.
▲ 주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모과도 탐스럽게 열렸다.
▲ 마을 어귀의 고목...
어릴때 고향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옛날 옛적에~,, 하시며 들려주시던 동구밖 도깨비이야기가 생각난다.
▲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淸凉山歌)..
청량산과 인연을 맺은 선비 중에 퇴계 이황(1501~1570)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퇴계는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부를 만큼 청량산을 사랑했다.
청량산은 퇴계의 5대 고조부 때 나라에서 하사받은 봉산(封山)으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곳에서 수학을 했다.
퇴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13세가 되던 해 청량산에 들어가 사촌들과 학문을 익혔다.
그 후로 퇴계는 틈만 나면 청량산을 찾았다.
도산서당을 지을 때는 청량산과 지금의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에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 13시 37분 : 청량폭포.
▲ 시원한 계곡에서 땀을 들이고..안동 월영교에 들리기로 한다.
▲ 16시 52분 : 안동 월영교 주차장,
▲ 월영교(月映橋),, 달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이다.
▲ 입구..
▲ 월영교는...
2003년 개통되었으며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이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월영교란 명칭은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확정되었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되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이런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이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고자
오늘 우리는 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의 달빛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 백과사전 발췌 --
▲ ㅎㅎㅎ~
그림이 될것 같아서 뛰어 보라고 했더니..뛰라.. 한다고 또 합니다..ㅋㅋ
이런게 여행의 재미 입니다..언제 해봅니까..
회장님의 표정이 완전 압권입니다. 세분 너무 멋집니다..
그런데,, 이런이런.. X가... 19금이라서..
▲ 얼능...
반창고로 응급처치 하였습니다..ㅋㅋㅋ~
▲ 월영정..
▲ 계미년 2월 27일 상량이네요.
▲ 오른쪽...
▲ 왼쪽...
▲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면 너무 좋을듯 합니다..
물위에 떨어지는 하얀 낙화도 운치가 있을듯 하네요..
▲ 중국의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서호(西湖)에,보름달이 뜨는날 석등에 불을 밝히면
삼담인월(三潭印月)이라 하여 세개의 달이 뜬다고 했다...
규모면에서는 서호에 못미치지만,,이곳, 월영교 야경도 어느곳 못지않게 너무나 아름답다.
지금은 달이 아닌 해가 물속에 잠겼다.. 하늘의 해도,, 저 물속의 해도,,,
사랑하는 뫼가람님들의 눈동자속의 해도 분명,,, 같은 해,,이다..
▲ 곳곳에..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있어 지루함이 없다.
▲ 법흥교를 건너가면 트레킹은 끝이 난다.
▲ 강 건너편의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제16호 1962년 12월 20일).
일제강점기에 경부선을 놓으면서
전탑 바로앞에까지 철길을 놓아 민족 정신을 말살한 아픔의 현장이다.
높이 17m. 국보 제16호. 한국 최고(最古) 최대의 전탑이다.
기단(基壇)은 단층에 평면은 방형(方形)인데
현재는 지표에 팔부중상(八部衆像) 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한 화강석 판석을 1면에 6매씩 세우고
남면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전탑(塼塔) 이라는 것은 흙벽돌을 쌓아 만든 탑을 말한다......
▲ 대기하고 있는 뫼가람의 애마..
▲ 17시 55분 : 일정을 마치고,,대구로 출발,,
오래만에 가본 청량산도 좋았고..시원한 청량폭포.
뫼가람총무님의 정성담은 돼지양념두루치기(?)도 좋았고..
안동 월영교 트레킹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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