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1월 31일 <청산 802m>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산행코스백록마을회관 - 도덕골 - 선유재 - 청산 - 선유재 - 백록마을회관 - 남지장사 산행완료. 

산행시작 : 백록마을회관 10시 19분.

산행종료 : 백록마을회관 13시 30분.

(산행소요시간 : 3시간 11분 소요 / 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10 : 19  백록마을 회관.

11 : 09  선유재.

11 : 57  청산 정상.

12 : 03  팔각정 쉼터.

12 : 33  선유재.

13 : 30  백록마을 회관.

13 : 59  남지장사 산행완료.

 

2016년 1월 31일 마지막 일요일.. 저녁에는

서울,,부산에서 오는 친구들의 모임이라 멀리 원정 산행은 못가고..,

낮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하던중에 산친구를 꼬드겨서

마침, 토요일에 내린 비가 산악지역에서는 눈으로 내렸을거라는 기대감으로

팔공산에나 가볍게 다녀올까 하고 나갔다가,,갑자기 가창 우록 생각이 난다.

남지장사입구 백록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나 예상은 적중,,

 

10시 19분 : 백록마을회관. 

백록(白鹿)마을은 사명대사가 남지장사에서 수도하며 승병을 키울때

마을에 하얀 사슴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 마을 쉼터 정자. 

래인거맥(來人去脈) 오고 감이 맥을 따른다,,,

또는,, 사람은 맥을 따라 간다...라고 해석해도 될듯하다.

순리에 따르라는 뜻일 것이다.

 

 

▲ 백록마을 전경. 

고려말 조선초에 양호당 우현보의 아들인

홍수(洪壽), 홍강(洪康), 홍명(洪命)과 공양왕의 부마인 손자 성범(成範)등이

정도전의 난을 피해 청도(淸道)등지로 숨어와서 살다가 

5세손 백록당(白鹿堂) 우성범(禹成范 1534-1603)이

이곳 백록동(白鹿洞)에 정착한 세거지이다.

 

 

▲ 빈집<1>..

 

 

▲ 빈집<2>..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

 

1980년대 후반은.우리 사회의 경제 상황이 맞물리는 때,

1980년대 후반은 산업화의 정점에 이르러.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로 빈집이 늘어가고

인들만 거주하는 현상이 가속화 되어 왔었다.

최근에는 귀농과 귀촌으로 방향이 바뀌기도 하였으니

이 또한 경제 상황의 결과일 것이다.

 

 

▲ 백록 그집.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백록마을에 있는,,

이 동네에서는 꽤나 소문난 맛집으로 통하며 맛집포스팅에 올라오는 집이다.

 

 

 

▲ 도덕골.

 

 

▲ 선유재 가는길.

 

 

▲ 백록그집식당에서 사육하는 토종닭 농장.

 

 

▲ 찜질방. 

이곳 또한.. 백록식당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 지철심경(志鐵心鏡).. 

의지(意志)는 쇠와 같이 마음은 거울같이,,라는 말로..

"무릇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자기의 뜻을 펴 나가기를 의지는 굳게 다지며

한점 부끄럼 없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쳐 보고

마음을 다스려 밝게 그리고 행동은 부드럽게, 유연하게,, 라는 뜻이다."

 

 

▲ 내부는 서너사람이 누울수 있도록 되어 있고,,

커피.. 계란등의 간단한 군것질도 할수 있어서 가족단위로 오면 좋을듯.....

 

 

▲ 그네도 있고..

 

 

▲ 등로는,, 잘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올라 간다.

 

 

 

▲ 남지장사 둘레길은 이정표가 잘 되어 있고,,

 

 

▲ 누군가 나보다 한발 앞선 선답자의 족적을 따라 간다.

 

 

▲ 폭설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나무가 곳곳에 부러져 있다.

 

 

 

▲ 눈꽃이 몽울몽울 맺힌 소나무.

 

 

▲ 올겨울 눈산행다운 눈산행을 못해서 못내 아쉬웠는데..

 

 

▲ 고도를 높여갈수록 기대감은 부풀어 오르고..

 

 

▲ 후두둑 후두둑 흘러 내리는 눈꽃이 사라질새라..

눈꽃을 배경으로 한컷.

 

 

 

 

 

 

 

 

 

11시 09분 : 선유재..

 

 

▲ 철탑속 세상.

 

 

 

 

 

 

 

 

 

 

 

 

 

 

 

 

 

스틱을 꽂아보니 적어도 30cm이상 쌓였다.

 

 

 

 

 

 

 

올겨울 만나지 못한 눈산행의 반가움인지..연신 셧터를 눌러 본다..

 

 

 

 

 

 

 

 

 

 

 

 

 

 

부러진 소나무설화.. 

그동안 잘도 버텼는데..한순간의 삶의 무게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저멀리 가창의 최정산과 주암산 능선이 보인다.

 

 

 

 

11시 59분 : 청산 정상.

 

 

 

 

 

이렇게 아름다운 설화를,,

화가의 손으로.. 조각가의 손으로는 만들수가 없다.

 

 

 

 

남지장사로 기려던 계획을 여기서 접는다.

앞서가던 선답자의 족적은 최정산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남지장사로 가는 능선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고.

30cm 이상 쌓인 눈을 밟고 헤쳐나가기엔 무리다.

 

 

올라올때 보지 못했던 상고대를,,,

 

 

즐기며 하산한다.

 

 

 

 

 

 

두그루의 소나무가.. 

두몸이 한몸인듯,,연리목처럼 하나된 사랑의 몸짓이 하늘을 향한다.

 

 

 

분명,, 올라올때는 없었던 멧돼지 발자욱이..

 

 

등로를 벗어나 다른 능선으로 빠진다.

발자욱 흔적을 보아서는 보통 큰놈이 아닌것 같다. 

내가..일주일만 젊었다면..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 수호지(水滸誌)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았다는 무송(武松)이 처럼 

멧돼지 한마리 거뜬히 때려 잡는건데...ㅎㅎㅎㅎㅎㅎ~

 

 

▲ 다시 백록그집 식당의 농장. 국궁 체험대도 있다.

 

 

▲ 건너편으로는 과녁도 보이고.,,,,

 

 

▲ 백록마을 사당인듯..

 

 

▲ 남지장사.

차를 파킹하고 청련암까지 도보로 다녀 온다.

 

 

▲ 남지장사 부도.

 

 

▲ 남지장사에서 관리하는 수목장.

 

 

 

▲ 청련암(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신문왕 4년(684) 양개조사(良介祖師)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그 암자로서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 휘하의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병화로 소실되었다. 

그 뒤 1653년(효종 4)부터 1714년(숙종 40)까지

인혜(印惠)·승민(勝敏)·지월(池月) 등이 중건·중창하였고,

1806년(순조 6)에 화재를 입어 2년 뒤 재건되었다.

 

 

▲ 문은 잠기지 않았지만 닫겨 있어서

 

 

▲ 담너머로 보니,, 

마루에 걸린 동종이 보이길래..

 

 

▲ 당겨보니 군위 압곡사 동종이 생각난다...

 

 

▲ 다시 남지장사.

 

 

▲ 고풍스러운 내부 모습..

 

 

▲ 광명루. 

대게의 현판은 밖에 달려 있는데..남지장사의 광명루 현판은 안에 달려 있다.

그리고 누각의 형태가 아닌데도 루(樓)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안쪽에서 왼편으로는 종각이 달려 있다.

 

 

▲ 왼쪽 벽에 공지된 글... 

내가 아는 사찰이란.. 

끊임없은 수행과 기도를 통해 오염되고 더럽혀진 마음과 스트레스와 짜증,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 주는 부처님 도량 일진대..

삼재 소멸이니,, 칠성신앙, 산신신앙. 49제나,, 천도제 등은 

토속 민간신앙이 고착화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불교화 된 기복신앙(祈福信仰)들이라고 알고 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등불삼아 진리에 귀의 하라고 유언까지 하시면서 열반에 드셨다는데

올바른 마음 수행이 아니라,, 깨달음과는 상관없는

오로지,, 복(福).. 만을 받기 위한,,욕심의 행위로만 보인다.. 

어디까지나..신앙인이 아닌 사람의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종각 밖에 모계(慕溪)와 운계(雲溪)·경운(景雲)대사의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 남지장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4년(684년) 양개대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南地藏寺)를 창건, 

무학대사(無學大師) 등 많은 도인이 수도하였고 임진왜란시는 사명대사(四溟大師)등

승병(僧兵)들의 훈련장이기도하다.

 

 

 

 

▲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이 절을 승병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승병의병장 우배순이 거느린 의병이 함께 훈련하였는데,

모두 3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왜군에게 점령되어 불에 탔다.

 

 

▲ 남지장사 대웅전.

 

 

▲ 해우소.

 

 

▲ 모계(慕溪)가 중창한 뒤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北地藏寺)와

대칭되는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남지장사로 바꿨다고 한다.
 

 

 

 

 

▲ 오늘 산행은 처음 계획했던대로 능선을 타고와서

요사채 지붕 너머로 보이는 곳에서 청련암으로 하산 하려 했어나

겨울산행은 무리수는 금물이다.,..... 

따뜻한 봄날에 다시 계획을 세우고 미답의 산행코스를

완주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산문을 나선다.

 

 

▲ 우록리,, 필분재(苾芬齋).

인천이씨(仁川李氏) 은율 이명철(隱栗 李明哲)을 추모(追慕)하는 재사(齋舍). 

이명철(李明哲,1662~1724)은

자(字)는 군익(君益)이고 호(號)는 은율(隱栗)이며 본관(本貫)은 인천(仁川)이다. 

시조(始祖)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둘째 아들로

모후의 성을 따라 허씨(許氏)가 된 허겸(許謙)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이씨(李氏) 성을 사성(賜姓) 받고

소성(邵城, 현재의 인천) 백(伯)에 봉해져 인천이씨가 되었다.

 

 

▲ 귀가길에..

가창 옥분리의 <묵쳐먹고 가는 집>에 들러.. 

 

 

▲ 오늘 하루,,

기대치 이상의 환상적인 눈산행을 같이한 산친구와

막걸리 한잔에 감동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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