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29일(토).

두타산(1353m) / 쉰움산(670m) : 강원도 동해시 / 삼척시.

 

산행코스 : 댓재공원-통골목이-두타산-능선분기점-쉰움산-천은사-천은사주차장 산행종료.

산행시작 : 댓재공원 09시 42분.

산행종료 : 천은사주차 15시 46분.

전체거리 :  12.7km.

전체시간 : 06시간 03분.

운동시간 : 05시간 28분.

휴식시간 : 00시간 35분.

 

09 : 42  댓재공원 출발.

11 : 13  통골목이.

12 : 29  두타산.

13 : 22  능선분기점.

14 : 22  쉰움산.

15 : 24  천은사.

15 : 46  천은사주차 산행종료.

 

10시 42분 : 댓재(810m)공원. 삼척시에서 2003년에 조성한 힐링810 댓재공원 조형물이다.

"댓재"의 지명유래는 조선지도, 해동여지도, 대동여지도 등에 죽령(竹嶺)이라 표기되어 있고 고개마루에 예부터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죽치령(竹峙).. 또는 죽현(竹峴)으로도 불리웠고 예로부터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관문이었다.

 

설치물 뒷쪽으로 전망대가 있어 가본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상의 황장산이 올려다 보이고..

 

멀리 삼척시의 진산 "근산" 이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망원경으로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백두대간 댓재..

 

햇댓등 들머리의 산신각..

 

 두타산등산로입구는 댓재휴게소 건너편의..

 

 화장실이 있는 주차장 안쪽에 들머리가 있다.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 구간은 등산로 정비중이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두타산은 직진이고 햇댓등을 경유하여 두타산으로 가면 약 30여분정도 더 소요된다고 한다..

 

 수레길같은 넉넉한 길이 한동안 이어 진다.

 

 참좁쌀풀..

꽃말은... "항상 기억하세요..".. "동심" 이다.

 

넓고 편안한 길을 따라 무심코 가다가 보면..

 

 자칫... 직진해버릴수있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이 두타산으로 가는 백두대간길이다.

 

급하지도 않은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가면.. 참나무 활엽수 군락은..

 

식생은 소나무 군락으로 바뀌고..

 

10시 00분 : 햇댓등길과 만나는 주능선에 올라선다. 입구에서 13~4뷴 소요..

 

산행지도상의 934봉의 왼쪽 사면을 따라 간다.

 

이내 펑퍼짐한 안부를 지나고..

 

표기는 없지만.. 직감상 이정표가 있는 작은 통골재인것 같다..

 

오르내림으로 짐작컨대.. 1028봉인것 같고...

 

오늘 대구의 날씨는 35도라고 한다.. 그늘좋고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에 고마워 하며..

 

전형적인 육산에서 방구돌 하나도 반갑다.

 

▲ 혼자만의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여기가 1021봉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조망은 1도 없는 밀림수준의 등로에 모처럼 하늘이 뻥!~~ 하고 뚫린다. 두타산이 아직도 멀다.

 

 두타산의 연리목... 두몸이 한몸이 되었다.

 

두타산까지 3.3km다... 사사오입으로 절반을 왔고.. 절만이 남았다며.. 스스로 자위한다.

 

 두타산까지.. 2.6km.. 이제는 걸어 온 길보다.. 남은 길이 적게 남았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는 수난이 많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송진채취를 당하고.. 여기는 산불에 속이 까맣게 탔다...

 

11시 13분 : 통골목이 도착... 아래쪽에 소요시간이 새겨진 빗돌을 확대해 본다.

 

 댓재 입구에서 1시간 26분 걸렸다... 아주 양호한 걸음이다.. 이제 1시간 30분만에 두타산에 도착할지...

 

지도상의  1243봉 오름길이.. 댓재구간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경사가 아주 급한것도 아닌데 은근히 힘든다..

두타산 오르는 길은 두타행의 길이다.. 의식주에 대한 욕망을 끊고 소욕지족하는 불교 수행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복이 아니다.. 산은 내게 맞춰 주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그 산에 동화 되고 맞춰가는 것이다..

 

두타산성의 흔적.. 여기까지 흔적이 있는걸 보면.. 산성의 규모가 미루어 짐작이 간다.

 

11시 52분 : 1243봉 9부능선 도착..

 

여기서 고맙게도.. 1243봉을 오르지 않고 사면을 타고 간다..

 

모싯대... 꽃말은... "영원한 사랑" 이다...

여기서부터는 태백의 대덕산 산상화원 못지않은 야생화 천국이 이어 진다.

 

섬말나리..

꽃말은... "더 이상 고귀할수 없다" 이다.

 

참취...

꽃말은... "참맛" 과... "이별" 이다.

 

▲ 새며느리밥풀꽃.

꽃말은... "며느리의 한"... "질투" 이다.

 

▲ 둥근이질풀..

꽃말은... "새색시" 이다.

 

▲ 나비나물.

꽃말은... "근심.. 걱정" 이다.

 

▲ 청옥산능선.

30년도 전에 무릉계곡 용추폭포에서 청옥산을 오르면서... 몸서리 쳤던 학등능선이 어제같이 진저리 난다..ㅎㅎ~..

 

▲ 청옥산에서 삼척시 하장면으로 이어지는 능선..

 

▲ 댓재에서 올라온 능선...

 

▲ 지척인 두타산 정상.

 

▲ 동자꽃.

꽃말은...  "기다림" 이다..

 

아주 먼 옛날 깊고 깊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스님 한 분과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다.

동자는 스님이 마을에 갔다가 부모를 잃고 헤메는 것을 불쌍히 여겨 데려온 소년이었다.

강원도 지방에는 겨울이 유난히 일찍 찾아온다. 그래서 가을 추수도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게한다.
동짓달 무렵, 겨울 채비가 덜 된 것을 걱정한 스님은 어린 동자와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단숨에 마을에 갔다 온다고 동자에게 이르고 암자를 나섰지만 험한 산간 지역이므로 몇 십리를 가야 겨우 인가를 볼 수

있었다. 스님은 허겁지겁 준비를 했지만 하루 해는 짧기만 하였다. 그런데 스님이 산을 내려온 뒤 산에는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 이르러서는 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말았다.
도저히 스님이 암자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스님은 오직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강원 지방은 겨울에 한번 눈이 쌓이면 겨울 내내 녹지 않고 있다가 늦은 봄 4~5월이 되어야 눈이 녹는다.

암자의 어린 동자는 눈이 많이 와서 스님이 못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린 동자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마을로

내려간 스님이 이제나 저제나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스님이 내려간 언덕만 바라보던 동자는 마침내 앉은 채로 얼어죽고 말았다.
마을에 머물고 있던 스님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드디어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서둘러 암자를 향해 길을 떠났다. 암자에 도착한 스님은 마당 끝 언덕에 오뚝하게 앉아서 죽은 동자를 발견하였다.
스님은 죽은 동자를 바로 그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다.

 

그 해....
여름이 되자 동자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났다.
그리고 한여름이 되니 꼭 동자의 얼굴같은 붉은색의 꽃들이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하여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사람들도 죽은 동자를 생각하여 이 꽃을 동자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싱아 꽃..

꽃말은... "친근한 정" 이다.. 싱아의 뜻은.. 마디풀과의 여러해 살이 플..이라는 뜻이다.

 

 12시 29분 : 두타산 정상... 통골목이에서 1시간 16분만에 고지에 올랐다. 내가 생각해도 착한 성적이다.. ㅎ~

 

▲ 해발 1,357m의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산세가 조용하면서 높이 솟아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두타산은 예로부터 삼척 지방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되었다.

동해안 지방에서 볼 때 서쪽 먼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산은 정기를 발하여  주민들의 삶의 근원이 된다고 믿어 왔다.

 

▲ 실로 오랜만에 서는 정상이다..

 

▲ 하산길은 무릉계곡쪽으로 가다가 천은사 방향으로 우틀한다.

 

▲ 두타산 내림길이 매우 상그럽다.

 

▲ 선바위가 있어.. 돌아가면서 보니..

 

▲ 옆모습이 석장승을 닮았다.

 

▲ 가끔씩 나타나는 바위 전망대를 그냥 지나가면 전망바위에 대한 모독이다.. 휘둘러 보고 가자..

 

▲ 훤걸차게 달려가는 백두대간상의 고적대 갈미봉이 하늘금을 이룬다.

 

▲ 그 아래.. 무릉계곡이 숨어 있다..

 

▲ 주목들이..마치.. 오백나한처럼 두타행을 하는것 같다.. 두타(頭陀)는 인도의 고대언어(범어) ‘dhuta’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머리를 때려 번뇌를 털어버리는 불교의 수행" 을 말한다.

 

13시 10분 : 1차 대방골 갈림길..

 

▲ 대방골쪽의 시그널은 없지만.. 족적이 뚜렷한걸 보면.. 등산객이 더러는 찾는 모양이다.

 

13시 22분 : 2차 천은사 갈림길.. 여기가 중요 포인트다. 좌측은 무릉계곡 하산길이다.

 

▲ 많은 시그널이 무릉계곡쪽에 달려 있다.

 

▲ 천은사 하산길은 상대적으로 적게 달려 있다.

 

▲ 거친 내림길을 조심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서면..

 

▲ 드디어 착한 능선길로 바뀌고.. 금강송이 쭉쭉빵빵이다.

 

▲ 쉰움산 정상을 앞두고 돌탑이 한두개씩 보이기 시작한다.

 

▲ 지나온 두타산이 보이고.. 산수화에서나 봄직한 암벽과 노송의 아름다운 조화다.

 

돌무더기와...

 

 제단이 나타난다.

쉰움산은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무속의 성지라 할 만큼 산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제단과 돌탑 등이 즐비하다.

어느 할머니가 이곳에 놀러왔다가 그만 신이 내려 무당이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넓은 반석 위에는 크고 작은 우물같은 구멍이 여러개 보인다.

 

월출산 구정봉에 온듯한 느낌이다.

 

오십정 왼쪽 아래계곡은 비린내골의 바위 협곡이다. 비린내골은 임진왜란때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 썩는 냄새가

비릿하여 "비린내가 나는 골짜기"로 불리워지다가 지금은 "빛내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겨본 비린내골의 병풍바위..

 

정상에는 50여개의 우물이 있는데 이게 여성을 상징 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타산 정상 방향에 남성을 상징하는 돌들로

제단을 쌓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유명한 기도터 라고 한다.

 

앞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다음 지도나.. 네이버 지도에 "쉰움산"으로 표기된 봉우리다.

 

쉰움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두타산 중턱에 둥근꼴의 크고 작은 돌우물 50곳이 있으므로 오십정(五十井)이라 부른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십정의 순우리말인 "쉰움' ’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자로는 오십정산이라고도 표기를 한다.

 

주위를 돌아다 보니 쉰움산에 나혼자다..

 

인증샷을 해줄 산객을 기다리며..

 

하산길을 찾아놓기위해 바위지붕을 타고 끝까지 가본다.

 

더 이상 갈곳이 없다..

 

천은사 계곡.. 갈매기산 너머로는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 의 무덤인 "준경묘"가 있다.

 

 조금 있으니 일행들이 내려 온다...

 

하산은 온라인상의 쉰움산이라 표기된 봉우리 쪽으로 간다.

 

 안부로 내려 서니.. 모든 이정표는 오십정산을 쉰움산이라 가르키고 있고.. 이름뿐인 쉰움산 쪽으로는 많이 찾지 않는듯

희미한 족적만 보이길래. 그냥 통과하여 하산길을 따른다..

 

 14시 46분 : 천은사 1.7km 지점..

 

 거대한 반석위에 돌탑..

 

 죠스바위.. 끼워놓은 작은 돌들이 마치 죠스의 무시무시한 이빨 같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어마무시한 바위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적이라면 너무나 절묘한 현상이라..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누군가의 재치있는 설정이다..

 

소나무 꼭대기에 백발의 신선이 하얀도복을 입고 새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가부좌를 하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내림길의 첫 다리.. 계곡에 물이 없다..

 

 두번째 다리.. 여기는 물기라고는 흔적도 없다.

 

 세번째 다리에서 건너지 않고 천은사로 간다.

 

천은사는... 고려말 동안거사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758년(경덕왕 17)에 인도에서 온 두타행을 닦던 세 명의 두타삼선(頭陀三仙)이..금련(金蓮), 흑련(黑蓮), 백련(白蓮)의

세 연꽃을 가지고 왔는데 그 중에 백련을 심고 '백련대(白蓮臺)'라고 한 곳이 지금의 천은사 위치라고 한다.

839년(문성왕 1)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을 건립하고 규모 있는 사찰로 만들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중수하고 이곳에서 대장경을 열람한 뒤 간장암(看藏庵)이라고 하였다. 이승휴는 또 이 절이 있는

용계(龍溪)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고, 71세 되던 해에는 그가 머물렀던 용안당(容安堂)의 현판을 내리고

간장사로 바꾼 뒤, 이 절에 전답 등을 시주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곳에 와서 절을 중건하고,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고 하였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인.. 삼척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三陟 天恩寺 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조선말, 대한제국때인1899년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능(준경묘)을 만들고 이 절을 목조의 원당사찰

로 삼았는데, 이때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 는 의미로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뒤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주지 문일봉(文一峰)이 부임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약사전.. 육화료(六和寮)..

영월루(映樓).. 삼성각(三聖閣) 등을 신축하였고, 요사채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은사(天恩寺) 육화료(六和寮).

 

▲ 굴피지붕의 통방아.

 

사적 제421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三陟 頭陀山 李承休 遺蹟).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의 위패를 모신 동안사(動安祠).

제왕운기는 몽고와의 긴 전쟁후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자주국으로의 위치가 흔들리던 고려사회에서, 단군을 우리 역사에

편입시켜 역사의 유구성을 과시하고, 단군을 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나타내었으며, 발해를 최초로 우리 역사속에 포함

시켜, 만주일대 까지도 고려의 영토임을 고증하였고,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성, 자주성, 주체성을 가진 우수한 문화민족임을

국민 각자에게 자각하게 하였던 고려중기의 대민족서사시다.

 

 동안사(動安祠) 맞은편의 도로를 따라 천은사를 나선다.

 

 두타산 천은사 일주문..

 

 동안거사 이승휴 상징 조형물.

 

 이승휴 생애 약전..

 

 15시 46분 : 두타교 건너 주차장 산행종료..

 

▲ 대구로 돌아가는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석양빛이 너무나 곱다..

서쪽 하늘이 서서히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서본 두타산 정상과 쉰움산의 그리움을 안고 스르르 눈을

감고 찰라의 꿈속에서 행복한 그림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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