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09일
용문산(602m) :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산행코스 : 화원자연휴양림 - 전망대 - 용문산 - 닭지봉 - 닭지당산 - 골재 -
용문계곡 - 용문폭포 - 용문사 - 화원자연휴양림 산행 완료.
산행시작 : 화원자연휴양림 09시 43분.
산행종료 : 화원자연휴양림 13시 39분.
소요시간 : 약 6.6km / 3시간 56분 소요.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9 : 43 화원자연휴양림.
09 : 54 전망대.
10 : 43 용문산.
11 : 23 닭지봉.
11 : 52 닭지당산.
12 : 18 골재갈림길.
13 : 25 용문폭포.
13 : 30 용문사.
13 : 39 화원자연휴양림산행완료.
573돌의 한글날에
가깝다는 이유로 잘 찾게 되지 않는
달성지역의 <용문산>을 찾는다.
▲ 09시 43분 : 화원자연휴양림 용문산 들머리.
▲ 허허~..
철 없는 진달래 덕분에 혼자 웃지요..
▲ 고들빼기도 "날좀 보이소~" 한다.
▲ 20여분 가파르게 치고 올라 만나는 전망대...
여름철에는 쉬어가면 좋을듯..
▲ 휴양림산책로라 길은 순하다.
▲ 제 2전망대.
▲ 대구 남구의 앞산으로 가는 능선이 넘실거린다.
▲ 정상이 가까워짐인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용문산의 바위들은 하나같이
윗부분이 수평이다.
▲ 용문산 주능선 도착.
▲ 10시 43분 : 용문산 정상.
▲ 용문산 최고의 쉼터..
▲ 화원유원지와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수점이 보인다.
▲ 홀로산행의 또 다른 맛..
혼자라는 홀가분함이 있어 좋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에 맞추어 한발자국 한발자국 생각하면서
좋지 않은 기억은 버리고 즐거운 기억만 상기시키며
홀로의 공상을 방해 받지 않아서 좋다.
▲ 닭지봉 방향으로...
▲ 휴양림탈출로..
▲ 우람한 <산부인과 바위>군이 앞을 가로 막는다.
홀로 걷는 길이라 잘 살펴 오른다.
▲ 산부인과바위 꼭대기도 넓고 평평하여
신선들이 바둑이라도 두었음직 하다.
▲ 지나온 용문산.
▲ 바위 꼭대기에 홀로선 분재같은 소나무를 감상하는데
인간들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온다..
어허!~~
신선을 생각했더니
정말로 신선들이 바둑이라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라말 고운 최치원선생이 말년에 가야산에 들어가서
갓과 신발만 남기고 신선처럼 사라졌다던데..
내가 오늘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도 모르고...
신선들 바둑놀음에 빠져 내 배낭만 용문산에 덩그머니
남아 있게 되지는 아닐까?..
ㅎㅎㅎ~
▲ 인기척을 찾아 둘러 보니
반대편 능선에 사람들이 보인다.
으휴!~~
신선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고..
엄청나게 큰 바위사이로 날아드는 한줄기 바람이
얼굴을 서늘하게 한다.
▲ 커다란 바위 사이로 한글날의 하늘도 올려다 보고..
▲ 사이길 돌고 돌아 바위군을 지난다.
▲ 기내미재 갈림길.
▲ 11시 23분 : 닭지봉.
옛날 대홍수 시대에,
합천의 <가야산>은 개 한 마리, <비슬산>>은 비둘기 한 마리
<닭지봉>은 닭 한 마리 앉을 만큼만 남고 다 잠겼다고 한다.
해서...생긴 이름이라 했다는 ..
전설따라 삼천리다..
▲ 닭지만당산은 또 머꼬?..
▲ 청룡지맥 갈림길..
여기서 오른쪽은 비슬산. 왼쪽은 청룡산인데
청룡산 방향 표시는 없다.
▲ 고마운 코팅지 하나가 안내를 한다.
▲ 11시 52분 : 닭지만당산.
▲ 앞산 - 비슬산간 종주팀만 한두명 지나갈뿐..
▲ 등산로 정비는 잘되어 있다.
▲ 골재 절개지..
▲ 12시 18분 : 골재.
▲ 꽃향유 군락.
▲ 청룡산 가는길.
▲ 골재에서 화원자연휴양림으로 하산.
▲ 잘 만들어진 하산길에..
▲ 배~암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 나무야 너무 몸집 불리지마라..
바위도 짐이 무거우면 주저 앉느니라..
▲ 계곡물이 어찌나 맑은지...
▲ 폭포를 보기위해 용문계곡쪽으로..
▲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 청아한 물흐름 소리..
▲ 용문협곡..
▲ 용문폭포 상단.
▲ 용문폭포...
좌측 절벽에 문(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 용문(龍門)..
▲ 용문사입구.
▲ 대웅전이 아닌 극락전이다..
▲ 가우라.
흰색은 백접초라하고 붉은색은 홍접초다.
꽃말은..
섹시한 연인..떠나간 임을 그리워함이다.
▲ 13시 39분 : 화원자연휴양림 산행완료.
▲ 귀가길에 들린 마비정마을.
먼 옛날 이 마을에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비무>라는 숫 말과<백희>라는 아름다운 암말이 대나무 숲에 집을 짖고 살고 있었다.
<백희>라는 암말은 꽃과 약초를 먹고 살아 몸에는 늘 향기로운 냄새와 빛이 났고<비무>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백희가 먹을 꽃과 약초를 찾아<백희>에게 가져다 주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무>가 꽃과 약초를 구하러 멀리 떠나고<백희>만 남아 대나무밭에 혼자 있을때전장터로 떠나는 <마고담> 이라는 장수가 이곳을 지나다가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천리마가 있으면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대나무밭에 <백희>를 <비무>로 착각하여 전쟁터로 나갈 것을 제안하며천리마 <비무>의 실력을 보길 원했다.
이 말을 들은 <백희>는 <비무>가 전쟁터에 나가고생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무인척 고개를 끄덕였다.<마고담>은 “천리마는 화살보다 빨리 달린다하니 너의 실력을 봐야 되겠다”,하고 바위에 올라 건너편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백희>는 힘껏 달렸지만 화살을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화가난 마고담은 백희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그곳에는 하얀 백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 있었다.
이때 백희의 먹이를 구하러간 비무가 돌아와백희의 주검을 보고 슬픔에 겨워 구슬피 울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비무를 보지 못하였고 비무의 울음소리만 들을수 있었고백희의 무덤에 꽃과 약초가 끊임없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비무가 다녀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온 나라에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을 때이마을은 백희의 무덤에 놓인 약초로역병도 돌지 않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마을에서는 비무의 흔적을 알기 위해 마을길과 나무에는대나무 풍경을 달아 비무가 온 것을 알 수 있었고,비무가 온 것을 알리고자 나무 나팔을 불었으며비무를 기리고자 말솟대를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마고담은 잘못을 빌고자 정자를 짖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그 정자가 마비정이다. 이후 이 마을을 마비정이라 불리었다.
▲ 명마인 <비무>와 <백희>가 살았다는 대나무 숲.
▲ 전설속에서 튀어나온
<마고담>장군과 명마 <백희>...
▲ 명마 <비무>와 <백희>.
▲ 두번째 방문지 <남평문씨세거지>.
▲ 목화꽃.
▲ 국경일이라 개방되어 안으로..
▲ 관리사옥..
▲ 수봉정사(壽峯精舍) 현판은 수백당(守白堂).문중 자제들의 배움터이자 학문을 논하던 곳이라고..
수백당(守白堂)은
결백을 지키는 집이란 의미라 한다.
▲ 우물.
▲ 회화나무(수령 약300년).
회와나무는 좋은 일을 가져온다고 해서
옛날부터 궁궐이나 양반가옥에 심었다고 한다.
▲ 경유당(敬遺堂).
뜻을 공경히 받들어 길이 남겨지도록 한다..
▲ 유예문(遊藝門).
문중 서고(書庫)로 가는 문.
지붕의 기와 위에
<와송>이 보인다.
▲ 거경서사(居敬書舍)
문중의 문고를 보관하는 곳.
▲ 인수문고(仁壽文庫).
2만여권의 서책이 소장 되어 있다.
▲ 밖으로 나오니..
한글날에..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젊은 부부 가족의 가을 나들이...분위기와 어울린다.
▲ 득지본유(得之本有)요
얻었다 한들 본래 있던것이요.
실지본무(失之本無)니라..
잃었다 한들 본래 없던것이니라....
<문희갑>은 대구 전 시장이다..
벽암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 문익점의 목화밭을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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