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4월 03일 천반산(647m) : 전북 진안군 진안읍

 

산행코스 : 섬계산장 - 천반산 정상 - 전망대 - 말바위 - 성터 - 

송판서굴 갈림길 - 뜀바위 - 죽도 - 장전마을 하산완료

산행시작 : 섬계산장 10시 03분

하산완료 : 장전마을 14시 15분

(4시간 12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1003  섬계교 섬계산장 도착.

11 : 31  천반산 정상.

11 : 46  전망바위.

11 : 53  말 바위.

12 : 05  540봉 점심.

12 : 50  성터.

12 : 59  송판서굴 갈림길.

13 : 02  뜀바위.

13 : 48  죽도 절개지.

14 : 15  장전마을 화산완료.

14 : 46 ~ 16 : 10  하산주

16 : 20  대구로 출발.

 

10시 03분 : 섬계산장 도착. 

 

 

 

네델란드 풍차가 있어 신선함이 있다. 

 

 

 

천반산 들머리로. 

 

 

 

장난끼가 발동한 밀레님..

사랑의 큐피터 화살을 날린다,,,

ㅋㅋㅋ 누굴까?.. 

 

 

 

▲ 오늘 전라지역 일기예보에는 비소식이 있지만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이렇게 이쁜 솔잎표 웃음 한소쿠리를 들머리에 풀어놓았으니..

비를 관장 하시는 신령님도 어여삐 여기사 하산때 까지는

참아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의 물오름짓에 생강꽃이 한창이다. 

 

 

 

산허리를 감도는 편안한 길을 따라 약 20여분만에 만나는

능선 고개길.

 

여기서 개념도상의 589봉을 경유하는 능선길과

안부지름길로 나뉘어 진다. 

 

 

 

잠깐의 휴식은..

 

한달 동안의 각자의 "삶" 속에서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시간이다. 

 

 

 

현호색.

 

도감을 찾아보니 현호색의 종류가 다양하다..

꽃말은,,, 보물주머니,, 비밀이다. 

 

 

 

10시 58분 : 589봉과 천반산사이의 안부. 

 

 

 

 

▲ 급오름길의 밧줄구간.. 

 

 

 

11시 31분 : 천반산 인증샷.

 

천반산의 유래를 고찰해 보면 퍽 이채롭다.

첫째는 서쪽 산정 1천여 평의 분지가 하늘(天)에서 보면

마치 소반(小盤)모양이라는 설이다.

 

둘째는 이산 남쪽 가막리에 경주정씨가 400년 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마을 앞 냇가에 있는 ‘장독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진 복숭아 형상이라..

즉, 천반낙도(天盤落桃)라는 점이다.

 

셋째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 중에서

 산은 천반(天盤)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란다.

 



▲ 솔잎 수석부회장님..
천반산은 선조 22년(1589년)전라도를

반역향(反逆鄕)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는 안타까움이 전해온다.

 

 

 

▲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하던 한림대터,

그가 뛰어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 있고,

군사를 훈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천하는 공물로 일정한 주인이 있을 수 없다"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주장하고,

 

사색당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속에 억울하게 숨진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한의 삶이

녹아있는 천반산에..

 

오늘..

솔잎의 미녀군단이 정상에서

아름다운 미소 드리오

정여립 영령은 편히 쉬소서~~...
 

 

 

 

 

11시 46분 : 전망 바위.

 

 

 

▲ 진안읍 방향으로 날 좋은 날이면

마이산의 두 귀가 쫑긋 보이는데

오늘은 흐려서 조망이 좋지 않아 아쉽다.

 

천반산 북쪽으로는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고.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산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 진행 방향으로는 하산하여야 할

성터와 뜀바위로 연결 되는 능선이다.

 



▲ 전망 바위를 뒤로하고..

 



11시 53분 : 말바위.

 



▲ 말바위는.

정여립이 군사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곳이다.

 



▲ 천반산은..

 

내가 가보고싶은산으로 몇해 전부터 정해 놓았다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산인데

이번에 오르게 되어..

 

색바랜 책갈피에서 오래전에 곱게 접어 놓았던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아낸 기분이다.

 

 


하산지점인 장전마을이 손에 잡힐듯 하고,,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태극처럼 마을을 휘감고 있다.

 

마치...

영월 잣봉에서 동강을 내려다 보는듯

비슷한 분위기다. 

 

 

 

▲ 마을을 당겨보니

하산주를 하였던 장전마을 정자가 보인다,

 



▲ 절경인 곳에서 마음에 점찍기.

 



▲ 소고기 한점은 천하일미를 입에 넣은듯 한데..

 

아뿔사..

호사다마라더니..

 

참고 참았던 봄비 한방울이

콧등에 떨어지니

마음이 급하다. 

 

 

 

 

12시 49분 : 성터..

 



 

 

 

 

▲ 산행 내내 따라다니는 구량천.

 



▲ 송판서굴 갈림길.

 

조선 세종조에 예조판서를 지낸 퇴휴재(退休齋) 송보산(宋寶山·1432~1504)이

1456년 세조가 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보고

그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거했다는 굴이 있는 곳이다.

 

다녀오고 싶지만

동참하는 일행이 없어 통과.

 



▲ 기다림이 있는 벤치..

 

<산>

그를 만나고부터
날마다 흙을 날랐다
조바심과 기다림
설렘과 그리움을 날랐다

 

사랑이라
무거운 줄도 모르고
고된 줄도 모르고

흙이 모여 산이 되었다
그가 나의 산이 되었다

내가 만든 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푸른 산이 되었다
그런데

메아리가 없다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다

세월이
무너졌다.

-- 최석우·시인 --

 



 

▲ 뜀바위...

 

여기서

정여립이 말을 타고..

 



▲ 급경사에 땅이 메말라서 미끄럽다.

 



▲ 저 바위로 뛰어 다녔다는 뜀바위이다.

 

 

 

 

 

▲ 호남의 젖줄 금강이 태극을 그리고 있다.

 

 

 

▲ 천반산 최고의 조망처..

 

 

 

 

 

▲ 으휴,,

보는 내가 다리에 힘이 빠진다.ㅎㅎㅎ~

밀레님.. 우째 좀 말려보소..

 



 

 

▲ 나도 떨려서 팔걸이를 하였다..

ㅎㅎㅎ~ 

 

 

 

 

▲ 장전 마을을 향해,,,

 

반노송의 고목이

나도 한때 날린나무야~~,,라며

세월앞에 버티고 서서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젊음을 조금씩 잃어 가겠지..

 



▲ 높지는 않지만 다소 상그런 하산길이다.

가야산님 반가웠습니다.

 



 

 

 

13시 48분 : 죽도 절개지..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는 안타까움이 전해온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마을 사람들과,

대동계를 조직하고,

 

또한. 십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율곡의 뜻에 공감하여

천반산에서 군사를 조련하였다고 한다.

 

 

 

죽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으나

30여 년 전 직강공사를 하면서 산을 발파 절개해

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 여기서 시인으로 만족했어야 했을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두얼굴을 살펴보고 가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왕을 향한 절절한 충정의 글을 남겨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있지만..

 

선조실록에는 송강 정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사독한 정철은 천고의 간흉이다.'

<선조실록 145>

 

- '정철이 항상 불평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역적의 변이 신하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오늘이야 말로 내 뜻을 이룰 수 있는 날이라 여겨

자신이 신문하는 관원이 되어 일망타진 할 계책을 세웠다.'

<선조실록 84>

 

'정철의 일을 말하면 입이 더러워질 듯하니

방치하는 것이 옳다.'

<선조실록 54>

 

 

1589년(기축년 선조22년)에

<정여립>이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마을 사람들과,

대동계를 조직하고 천반산에서 군사를 조련한다는 고변을 듣고는.

거짖 역모사건의 함정을 파고는 1000명이 넘는 전라도 인재를

옥사 시키는 기축옥사를 만든다.

 

그의 주옥같은 문학작품 속에 광기어린 이면이 감춰지고 있는데

술을 좋아하여 늘 술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그 때문에 실수도 많았던

천재시인 정철,

 

예술가의 피를 타고난 그는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 센 성격으로 강원도 지역에 내려오는

 정철 관련 설화 등에선 성질이 고약하고,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잘 잡는

쪼잔한 인간으로 나온다.

 



광기어린 천재 정철이

선조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고 정적을 제거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 순진한 시인이 정치9단 선조의 계략에

이용당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정철이 기축옥사를 이용해 

엄청난 살육을 저지르고 정권을 잡은 건 사실이다.  

 

또한 전라도 지역에서 성장하며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닦고 결혼을 하고 

관직에 들어선 정철이 음모로 시작된 거짓 역모와 기축옥사를 통해 

호남지역의 인재들을 몰살 시키고

 

이후 호남이 역적의 땅이 되어 그쪽 인재들의 등용을

막았던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몸부림 이었을까?

 

그런 정철도 결국은 선조의 눈밖에 벗어나고

결국엔 선조가 정철을 일컬어 간철(간사한 정철),

흉철(흉악한 정철), 독철(독한 정철) 등으로 부르며,

선조실록에 험한 평가가 올라가고 내처지게 된다.

 

당시 정철과 언쟁을 벌이며 정철이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던

정철의 정적인 동인 출신 이발(李潑)의 식솔들도 무사할 수 없었다.

 

종의 아들과 바꿔치기 하여 극적으로 대(代)를 이을 수 있었던

광산 이씨 이발(李潑)의 후손들은 지금도 명절이나 제사 때 고기를 다지면서

', , ' 하고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고 한다.

 

 

 

 

 

▲ 구량천을 따라서 역류하여 올라간다.

 



 

▲ 장진마을 여울목.

 



 

 

 

 

 

▲ 주인장의 정성과 땀이 돋보이는

스톤스토리 하우스(STONESTORY HOUSE).

 



 

14시 15분 : 장전 마을 하산완료.

 

하산 타임이 절묘하다.

소강상태를 보이던 빗방울이 드디어 굵어진다.

 



▲ 장전마을의 하산주 장소로 가는길..그런데... 입구의 글이 요상하다.


엥?... 이게 무슨 말인고..

새벽은 두번 오다니...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오타일 것이다.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진시황(秦始皇)도 고작 50년을 사는 데 그쳤다.


陶淵明(도연명)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성년불중래(盛年不重來)요...-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일일난재신(日日難再晨)...-새벽은 두 번이 없네.

급시당면려(及時當勉勵)...-때 맞춰 열심히 해야 할 것을,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 장전마을 마을회관과 정자.

멋진 곳에 하산주 장소를 섭외 하였다..

 

수석부회장님..

능력 인정 합니다~..

 



 

▲ 사라져 가는 농촌의 모습.

 



▲ 산수유.

 

 

 

▲ 밀레님은 언제또,,

명셰프가 되셨나요...ㅎㅎㅎ~

 



 

▲ 수고로움의 손길이 있기에

모든 님들이 즐겁고, 산악회가 굴러 갑니다..

 

 

 

▲ 명 셰프도 뜨거운 국물맛 앞에서는,,ㅋㅋㅋ

 

 

 

▲ ㅎㅎㅎㅎㅎ

밀레님,, 본사람이 있는데 우짜는교..

입천정 빨리 나으소,,

 

이정도 장난은 이해 하지요?...ㅎㅎㅎ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 산악회,, 관록의 두 총무님.

 



 

 

▲ 연비정..

제비가 나는 정자..

 

이제 곧 장전마을에도 박씨하나 물고온 제비가 돌아와

가을에는 흥부의 박타는 소리가 들리겠지요..

 



▲ 밭둑에 달래가 소복하다..

 



▲ 민들레..


민들레의 꽃말은 행복,, 내사랑 그대에게 드려요,, 경박,, 이별 이다.

성서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때 홍수로 인간세상이 물에 잠겨 모두들 도망을 갔는데,

민들레는 발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갔다고 한다.
물이 점점 차오르자 민들레는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고한다.

 

민들레는 마지막희망으로 하나님께 구원의 기도를 올렸는데

하나님은 민들레를 불쌍하게 여겨 그 씨앗을 멀리 날려 산 중턱 양지 바른곳에 피어나게 해주었다. 

민들레는 그 후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러보며 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 봄비에 촉촉히 젖은 모습이 아름답고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 꽃잔디..

 



▲ 하산주도 끝나고 솔잎의 애마에 승차..

 

 

 

▲ 고문님의 하사주,,

청와대.

 

귀하고 고마운 술한잔

감사한 마음을 안주삼아 잘 마셨습니다..

 

오고 싶어 하였던 산이라 기분업 이었고..

여전히 정 나눔에 인색해 하지 않는 솔잎집행부에 편안함이었고

금강,,구량천이 만들어 내는 태극의 이치에 순응을 배웠고.

 

어린아이는 하루에 300번을 웃는데 비해

성인은 하루에 고작 15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삶의 팍팍함 때문에 웃을 일이 적어지나 봅니다.

 

솔잎 회원님들과 함께..

좋은 곳에서 많이 웃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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