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부봉(917m)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산행코스 : 하늘재 - 모래산 - 탄항산(월항산) - 부봉 - 3봉 - 4봉 - 5봉 -
조곡관(제2관문) - 주흘관(제1관문) - 새재남부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하늘재 : 09시 25분 산행시작.
하산완료 : 문경새재 남부주차장 : 15시 21분(5시간 56분 소요 : 휴식시간포함)
09 : 25 하늘재 출발.
09 : 43 모래산.
10 : 20 탄항산(월항삼봉).
11 : 43 부봉(제 1봉).
12 : 10 제 3봉.
12 : 48 제 5봉.
13 : 53 조곡관(제 2관문).
14 : 42 주흘관(제 1관문).
15 : 21 문경새재 남부주차장 산행 완료.
▲ 08시 03분 : 선산 휴게소에서..
안개 자욱했던 고속도로의 아침 안개가 걷히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수 있는 멋진 하루가 기대 된다.
▲ 하늘재(계립령) 가는길..
하늘재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를 넘어 고난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하늘재를 넘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왕조의 부활을 꿈꾸었지만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의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로 헤어지게 되었고
나라가 망해 떠돌이가 된 오누이의 생이별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미륵리에는 미륵불을, 덕주사지에는 마애불을 세워마주보게 했다고 한다.
▲ 백두대간상의 포암산..
▲ 계립령 유허비.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남진을 위해 다녔던 길이며,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경주로 몽진을 할때도 이용했던 길로,
조선 태종때 문경새재 길이 새로 나면서 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지만
문경에서 충주로 넘어 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재를 넘었다.
우리가 흔히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벌였던 싸움은
궁극적으로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국토의 중앙을 흐르는 한강 주변은 국토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서해의 뱃길을 통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 발전의 가장 중요한 땅을
손에 넣는 일이자 삼국간의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라는 내용들이다.
▲ 09시 25분 : 부봉 들머리 하늘재(계립령)도착.
삼국사기에 '아달라 이사금 3년(156)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적고 있다.
죽령은 이보다 2년 뒤에 개척되었으니 기록상으로 볼 때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인 셈이다.
계립령은 신라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으로 갈때 넘었다는 고개다.
그후...1000여년의 세월이 흐른 1414년 조선 태종 14년에
한양~영남을 잇는 지름길인 문경새재가 뚫리면서 하늘재는 잊혀진 "옛길"이 되었다.
▲ 고개를 바로 넘어가면 덕주공주의 한이 서린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백두간의 포암산으로 이어진다.
▲ 백두대간 하늘재 표지석.
하늘에 닿을듯 하다하여 "하늘재'라 부르지만..실제로는 해발 525m에 불과한 평범한 고갯길이다.
하지만...이 작은 고개에 구비구비 얽히고 설킨 마의태자의 사연은 고개보다 더 훨씬 높고 길다.
▲ 09시 43분 : 모래산.
마사토가 흘러 내려 마치 모래산 처럼 보인다.
▲ 10시 01분 : 하늘로 가는 통천문.
▲ 뒤에서 본 통천문,
▲ 마치 갑오징어 같이 생긴 기암..
▲ 거대한 수직 바위..
이런 바위에 마애불이라도 새겨져 있었다면...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 1000고지가 넘는 문경의 대표 명산인 주흘산 능선이 위용을 자랑한다.
주흘산(主屹山)의 흘(屹)자는 "산 뾰죽할 흘" 자 다..
▲ 고목사이로 본 주흘산 능선.
▲ 10시 20분 : 탄항산(월항삼봉).
▲ 몸통의 잎은 다떨어 졌는데..
모진 찬바람 서리를 고스라니 견뎌야 할,,,,늦게 피어난 어린 새싹이 못내 안쓰럽기만 하다.
▲ 10시 40분 : 평천재..
여기서부터 주흘산 갈림능선까지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한다.
▲ 여름날 그 푸름을 자랑하던 잎들도
낙엽되어 또 다른 잎들의 거름이 되고자 쌓여간다.
▲ 가파른 오름길에 괴목이,,,
목이 길어 슬픈 사슴처럼 묘한 자세로 서있다..
▲ 거의 45도에 가까운 급경사 계단을 치고 오르면..
▲ 11시 07분 : 주흘산과,, 부봉으로 갈리는 삼거리 능선. 우리 일행들은 부봉쪽을 택한다.
▲ 부봉(제 1봉)과 2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 기암에 홀로 소나무,,
▲ 묘하게도 올려져 있다.
▲ 부봉의 오름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 솔씨하나 너는 어찌,,,
그리도 앉을 곳이 없더냐..
안쓰러움에
눈마춤이라도 해 본다.
▲ 11시 34분 : 부봉과 마패봉 갈림길.
▲ 부봉 오름길의 밧줄..
▲ 힘들게 타고 올라 뒤돌아 보니.....
▲ 들머리였던 하늘재 너머로 포암산이 보이고
대미산능선이 산그리메를 그리며 백두대간으로 장쾌하게 달려가고 있다..
▲ 11시 45분 : 부봉(제 1봉) 정상.
▲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항우(항우)의 힘으로
태산을 떠 받치는 우리 회장님..
▲ 종바위.
▲ 119 충전표시등.
문경 소방서 구조대에서 설치한 솔라 표시등,
낮에 태양광선으로 충전된 에너지로,, 야간이나 안개시에 조난등산객들에게 도움을 준다.
▲ 부봉 3봉, 4봉, 5봉이 나란히 보인다.
▲ 기암.
중국 장가계 십리화랑에,,,채약노인암(採藥老仁巖 : 약초캐는 노인 바위)이 있다면
한국의 문경부봉에는 산삼 캐는 신선바위가 있다.
▲ 3봉 오름길..
▲ 월악산의 박쥐봉과 북바위봉인듯한 암릉군이 만리장성을 이룬다.
▲ 3봉 마지막 오름길.
▲ 누군가의 고마운 손길에 감사함을 드린다.
▲ 지나온 3봉위에 사람들이 개미같다. 자연앞에 한없이 작은 존재다.
▲ 5봉 오름길.
▲ 사자바위.
▲ 건너다 보이는 6봉,
▲ 12시 50분 : 5봉 인증샷.
뒷쪽으로는 깃대봉 신선암봉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기운차게 달려간다.
▲ 밧줄이 바위에스쳐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관을 씌어 놓았다..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 조곡관(제 2관문) 하산길.
▲ 잘생긴 적송이 수명을 다하려 하고 있다.
▲ 올려다 본, 6봉의 위용..
▲ 계곡으로 내려오면 울굿불긋 화려함을 뽐내는 단풍,,
▲ 조곡관 앞에는 가을의 휴일을 즐기려는 사람들,,,
▲ 조령관(제 3관문)으로 가는 새재 길..
▲ 뒷쪽의 영남 재2관..
▲ 앞쪽은 조곡관(鳥谷關)이라 되어 있다.
▲ 조곡폭포,, 인공폭포다.
▲ 산불됴심비.
지금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고.
높이 183㎝, 너비 75㎝의 원추형 자연석으로 '산불됴심'이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다.
"정조 때 별장이 잡인의 통행을 단속할 때와 관방유지를 위해
서민이 잘 알 수 있도록 한글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최초의 자연보호 표석이며 조선 후기에 한글을 새겨 넣은 보기드문 표석이다."
▲ 소원성취 돌탑.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한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되며.. 아들을 원하는 여인은 옥동자를 얻는다,,
라고 하는 소원돌탑이라고 전해진다.
▲ 용추폭포..
영화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최후를 촬영한 곳이다.
궁예는,,,"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은
찰라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라고 독백 하면서 최후를 맞는다.
▲ 교귀정(交龜亭).
▲ 교귀정과 소나무.
조선시대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 감사로부터
업무와 관인(官印)을 인수인계 받던 교인처(交印處)이다.
조선시대 신임감사의 인수인계는 도 경계 지점에서 실시하였으며 이 지점을 교귀(交龜)라 한다.
1470년(성종 초) 경에 건립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의병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였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二翼工),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 우측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교귀정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붉게타는 단풍과 수많은 행락객,
▲ 조령원터.
▲ 조령원터 내부.
고려와 조선조때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헤 주던 곳이다.
▲ 지름틀 바위.
기름을 짜는 도구인 기름틀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 영화 촬영 세트장.
태조 왕건, 대조영, 천추태후, 대왕세종,,,,등등의 수많은 사극을 촬영한 곳이다.
▲ 주흘관(영남제일관)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새로 만든 고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정면의 문경새재 주흘관.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에 만든 고갯길로,
예전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갈 때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경새재의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문경새재 주변은 주흘산과 조령산이 이루는 험준한 지형으로
국방상 중요한 요새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3개의 관문을 설치하며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었다.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던 영남좌로,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가던 영남우로, 부산에서 대구·문경새재·충주·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가 그것이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새재 길을 선호하게 된 것은 민간의 속설 탓이었다.
죽령은 ‘주욱 미끄러진다’해서,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비들은 죽령과 추풍령을 기피했던 것이다.
그러나,,,이 고개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라는
‘문경(聞慶)’의 새재였기 때문인 것이다.
▲ 더 없이 좋은 가을날의 수많은 단풍객들로 인산 인해다.
▲ 문경사과 품평회장이라 해서...
혹시나,, 맛보기 사과라도 한조각 멋볼까,, 하고 들어 갔더니..이런 제기... 눈으로만 맛보란다.
▲ 문경 사과 축제가 한창이다.
▲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가보니.
▲ 수와진..
가수 안상수가 심장병환자 돕기 자선공연을 하고 있다.
▲ 길게 늘어선 줄이 있어 따라가 보니..
▲ 문경 사과축제의 일환으로
사과릴레이.. "내 사과를 받아줘"라는 캠페인으로 행사를 하고 있다.
▲ 첫번째 주차장을 지나...
▲ 엄청난 차량과 인파의 북새통이다.
▲ 카트월드 오토캠핑장.
▲ 두번째 주차장도 지나고,,
▲ 과수원에는 탐스런 이브의 사과가,,,나 처럼,, 착한 아담을 유혹한다...ㅎㅎㅎ~
참아야 하느니라~ 금단의 열매인 것을...
▲ 15시 21분 : 하산 완료..
아싸...., 드뎌 찾았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 탈출한 기분이다..
▲ 주변에 서있는 관광버스의 차창에 비친 단풍도,,새로운 모습을 연출을 한다.
▲ 독특한 디자인의 펜션하우스..
얼마나할까... 궁금하다..궁금하면 오백원이라던데...... 오백원으로 사 버릴까,,,말까..
에이~~내가 참자,, 참아.. 길도 멀고 관리하기도 힘들테니까..ㅎㅎㅎ~
▲ 가을 속에 풍덩 빠졌던 환상의 부봉 산행,,
암릉을 타고 오르내림에 다소,, 힘은 들었지만..파아란 하늘의 캔버스에 그려보는
붉게 타는 단풍사이로 가을은 더욱 깊어가고,,,몇번을 다녀간 곳 이건만..
천년시공 역사의 문경새재길이 오늘의 내게는 또다른 "새로움" 이었고
"환상' 이었다... 그리고는,,,속절없는 시간속 앨범에 갇혀
산 그리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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