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비로봉(1193m)..청운대(1122m) 원효 구도의 길~..
▲ 팔공산 비로봉의 얼굴바위.
평범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그림이 되는 그런 바위다.
2020년 03월 22일
팔공산 <비로봉 : 1193m / 청운대 : 1122m>경북 군위군 부계면.
산행코스 : 오도암 제1주차장 - 오도암 - 원효굴 - 청운대 - 하늘공원 -
비로봉 정상 - 996봉 능선 - 군사도로 - 제1주차장 하산완료.
산행시작 : 오도암 제1주차장 10시 13분.
산행종료 : 오도암 제1주차장 16시 11분.
소요시간 : 약 7.2km / 5시간 58분 소요(휴식 및 점심시간1시간 포함)
09 : 54 오도암주차장 도착.
10 : 15 원효 구도의 길 입구.
11 : 04 오도암.
11 : 44 원효굴.
12 : 00 청운대 폐탄약창고(점심).
13 : 14 청운대 정상.
13 : 48 비로봉 정상.
14 : 07 비로봉 얼굴바위.
14 : 32 하늘정원.
15 : 03 996봉.
15 : 54 군사도로.
16 : 11 오도암주차장 하산완료.
▲ 10시 13분 : 원효 구도의길 입구. 오도암 가는길.
▲ 원효 구도의 길에서..
원효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 법명은 원효이다.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설총의 아버지이다.
젊은시절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수학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
고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십년 후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도중 하룻밤을 지내게 된 토굴에서
갈증이 나 토굴 속에서 고여 있는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아침에 깨어 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 묘지였고 물을 마셨던 그릇은 해골이였다.
이를 계기로 크게 깨달은 원효대사는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갔다.
신라로 돌아온 원효대사는 미친 사람이나 거지 행세를 하면서 민중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그 후 파계하였다.
원효대사가 교화한 사상으로는 인간의 원래 본성인 일심으로 돌아가자는 일심사상,
모두가 실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이 대표적이다.
▲ 누군가가 깨끗하게 쓸어 놓은 길에 감사하며..
▲ 입산시 세족장..
금강경에.. 세족이 부좌이좌(洗足已 敷座而坐)...라는 구절이 있다.
부처님은 탁발을 마치시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에 앉으시어 법을 설하셨다..라는 뜻이다.
속인의 마음 때를 씻고 오도암에 들라는 뜻인듯 하다.
▲ 천년전 원효가 걸었던 구도의 하늘도 저러했으리라..
▲ 996봉 능선.. 오늘의 하산길 코스다.
▲ 파도 치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번이랴.. 조용히 마음의 닻을 내리고 낮은곳에 묻어두어라...
추운겨울 다 지나고 꽃필 차례가 바로..그대 앞에 오리니...
코로나19로 인한 민생고를 묻어두고 봄꽃 필날을 기다리기엔 너무나 심각하옵니다. 부처님요...
▲ 10시 43분 : 청운정.
막걸리. 오이. 곶감... 정 나눔의 시간.
▲ 청운대..
▲ 11시 02분 : 오도암 사립문. 등산로는 오른쪽 데크를 따른다.
▲ 오도암은... 654년(무열왕 원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6년간 머물며
오도(悟道)의...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하여 <오도암>이라 한다.
▲ 불인선원(佛印禪院).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편액글씨는 <일타> 스님이 써준 것이다.
불인선원이란 부처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이곳은 박정희 전대통령시절, 간첩사건으로 전국의 독가촌과, 독립된 암자를 철거 할 당시
오도암이 철거 되었고 그 이후 아무도 살지 않아서 토담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공군부대 아래의 미사일보호구역이어서 풀 한 포기 쉽게 손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현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토담집 하나를 세워 원효대사의 천년 고찰을 되살려냈다.
1963년에 폐사되었는데, 지금 법당 안의 탱화와 불상은 그때의 것이라고 한다.
▲ 오도암에서 바라본 비로봉 통신탑.
일타(日陀)스님(1929~1999)은. 율사(律師). 법호는 동곡(東谷) 또는 삼여자(三餘子).
1943년 4월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49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 거북바위.
▲ 오도암 사립문을 나서며..
15~6년전의 일이 생각나 쓴웃음이 난다.
사립문이 열려 있어서 경내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주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삭발은 아니하였고
가사만 걸친 노스님(?)이 막사에서 나오더니
다짜고짜 "왜 카메라 촬영을 하느냐고~" 노발대발 호통을 친다,,,
"그러면 "촬영금지" 라는 경고문이라도 붙이던지... 아니면 문을 잠그던지요"..라는 항의도 못해보고
속절없이 그냥 쫏겨 나왔다..ㅎㅎ.
그 이후 세번을 다녀 갔는데 촬영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건물도 그때 당시에는 초라한 초옥에 천막이 씌워져 있었고 지금과는 격세지감이다.
▲ 1972년에 세운 어느 산악인의 추모비다.
▲ 11시 19분 : 714계단 입구.
▲ 내얼굴도 나오게 교대해주신 솔잎 회장님 감사합니다..
▲ 강인한 생명력...
▲ 원효굴로 가는 새로 생긴 데크.
▲ 원효굴로 가려면 천길단애를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타고 가야 되었는데
2019년 12월에 데크를 신설하여 누구나 원효굴을 볼수 있게 되었다.
▲ 혹자는 암벽타는 자연미가 없어 졌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1979년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이 황산에 다녀간후 그 비경에 취해 만인에게 알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황산을 거닐수 있게 하라"...하여 20여년간의 잔도 공사끝에 누구나 황산을 오르게 되었다.
▲ 자연은 일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환경 친화적인 공사로 누구나 원효굴을 볼수 있어니 사고 위험성과 부분별한 일부 산꾼들의 훼손도 막고
좋지 아니한가...
▲ 11시 44분 : 원효굴... 해발 1,050m 지점..
청운대 정상 아래 원효대사가 6년간 수도했던 일명 서당굴(誓幢窟)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이 서당굴에서는 원효보다 22년 연상인 김유신 장군이 먼저 수도하기도 했다...라고 전한다.
▲ 원효굴 안에서 밖을 보면 절묘한 신비감이 있었는데 데크와 사람들로 신비감이 반감 되었다..
▲ 좌선대를 뒤로하고..
▲ 12시 00분 : 청운대 가는길에 군사용 폐건물에서 점심.
▲ 13시 14분 : 청운대 정상.
▲ 작년에 없던 정상석.. 금년(2020년) 2월에 세웠다.
▲ 비로봉정상 오름 입구.
▲ 13시 48분 :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
비로봉은 '모든 곳을 두루 비춘다'라는 뜻의 범어(梵語)인 비로자나(毘盧遮那)에서 따왔다.
비로자나는 부처의 진신(眞身), 즉 법신불(法身佛)의 존칭이며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팔공산 동봉.
▲ 마애 여래불..
▲ 다시 돌아가는길에 청운대와 그 아래 오도암...
▲ 당겨 본 오도암.
▲ 당겨 본..하늘정원..
▲ 왼쪽의 오도암에서 올랐다가..비로봉을 완등하고 오른쪽 996봉쪽으로 하산이다.
▲ 경북 의성의 진산 금성산 비봉산.
▲ 많은 차들이 보이는 임시주차장.
▲ 14시 50분 : 폐쇄된 하늘정원 간이주차장.
▲ 간이주차장에서 약 3~4분 가량(약280m)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 간다.
▲ 996봉 들머리인 헬기장에 올라서면.
▲ 바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보인다.
▲ 996봉으로..
▲ 15시 54분 : 제1주차장으로 가는 군사도로.. 사실상의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다.
▲ 16시 11분 : 산행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