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경상도

대구 골목길투어,, 선교자의 길~~..

요산요수. 2014. 9. 9. 15:46



2014년 09월 9일. 대구골목투어 : 대구시 남산동 / 계산동.


                       골목투어 코스 : 남산동샬트르수녀원 - 성모원 - 카톨릭대학교 - 관덕정 - 계산성당

                                            - 청라언덕 = 선교사주택 - 제일교회 골목투어종료.


                                        투어시작 : 수녀원 : 10시 42분 산행시작.

                                        투어종료 : 제일교회 : 15시 22분. 

(1시간 58분 소요 : 휴식시간포함)

 

                                                 11 : 03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도.

                                                 11 : 09 성모원.

                                                 11 : 48 카톨릭대학교.

                                                 12 : 15 관덕정.

                                                 12 : 29  계산성당.

                                                 12 : 40  청라언덕.

                                                 12 : 42  선교사스윗츠 주택.

                                                 12 : 47  선교사챔니스 주택.

                                                 13 : 01 제일교회 골목투어 종료.

 

 

 

11시 03분 : 남산동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도착.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는

1888년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수도회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많은 일을 해주셨고 큰 발전도 이루어졌다.

1948년 한국관구가 설립되고, 그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67년에는 한국관구를 두 개의 관구로 나누어

중부지방은 서울관구가

남부지방은 대구관구가 담당하게 되었다.






 

▲ 당직수녀님의 말씀이 오늘은 추석연휴 휴관이라서

관람이 되지 않는다기에, 양해를 구해 마당에만 들어 갔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 대구 대교구청.

수녀원과 정문을 마주 하고 있다.




▲ 대구 성모당(시도유형문화재 29호).

 

대구 천주교회 1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플로리안 드망즈)주교가

루르드 성모굴을 본 따 만든 성당이다.

 

1918년에 루르드 성모굴의 크기와 바위의 세부적인 형상까지 비슷하게 본따 만들었다.

오른쪽 면의 뒷쪽이 안쪽으로 약간 꺾여 들어간 직사각형의 내부를

암굴처럼 꾸미고 그 위에 마리아상을 모셨다.

 

화강석으로 기초를 쌓고 흑색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을,

나머지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각 부분의 비례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의 짜임이 정교한 건물로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굴.


프랑스의 루르드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시골 소녀 베르나데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을 말한다.

 

3월 25일 발현 때 성모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는 베르나데타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다”라고 답하셨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 교회의 교도권은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 바 있다.


 


 

▲ 고즈넉한 교구장의 한옥에.

가을이 내려 앉고 있다.

 

 

 

▲ 역대 교구장들의 사목 표어.

 

 


 

▲ 효성여고 옛터자리에 우람한 꿀밤나무에

말벌집이 위험하다.

 

 


▲ 효성여고 엣터 표지석.

지금은 월성동으로 옮겨진 효설여고 옛터로

1938년 6월 1일 재단법인 대구천주교회유지재단으로 설립하였다.

 



▲ 옛 효성여고 운동장과 꾸르실료 교육관.

 

 

 

▲ 성직자 묘역.

 

 


▲ 꽃무릇.

 

 


아름답다라는 이유로 일본꽃이

우리의 고유 꽃인 상사화를 밀어내고 있는

화려함속에 왠지모를 씁쓸함이 있다..

 

 


▲ 카톨릭대학교 캠퍼스

김대건신부 동상이 교정을 내려다 보고 있다.

 

 


 

▲ 카톨릭대학교 담장.

 

 


 

 

 

 

 

 

▲ 성유스티노신학교 내부 모습.

 

 

 

 

▲ 김대건신부 동상.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현재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재준(金齋俊, 이냐시오)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명은 재복(再福)이었고, 이름은 지식(芝植)이었으며 세례명안드레아였다.

그의 집안은 양반 가문으로 천주교와 관계를 맺은 것은 조부 김진후(震厚, 비오)가

내포이존창(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의 전교로 입교하면서부터였다.

김대건은 1836년 16세의 나이로 최양업(良業, 토마스)과

 최방제(方濟,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 길에 올랐다.

그는 천신 만고 끝에 유학을 마치고 1842년 프랑스 함대장

세실(Cecille)의 통역관으로 조선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 정세의 어려움으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1844년 12월 15일 장춘 부근 팔가자(八家子)에서

 페레올 고(Ferreol 高) 주교로부터 사제 성품을 받았다.

이로써 그는 한국 최초의 한국인 사제가 되었다.

그는 사제 성품을 받은 다음, 목선(木船, 라파엘호)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충청도 강경(江景) 황산포(나바위)에 도착하였다.

그 후 그는 선교 활동에 전념하다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카톨릭대학교 교정을 나오면

대구의 유명한 남산동인쇄골묵이다.

 

 

 

▲ 관덕정.

 

과거 대구읍성의 남문이었던 영남제일문 밖 서남쪽 200보 지점,

행정구역상 주소로는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245번지에 위치하며. 

 

대구 지역에서는 천주교성지로서 기념되고 있는데,

동학의 교조(敎祖) 최제우(崔濟愚)가 처형된 장소라 하여

천도교 또한 주요 성지의 하나로서 기념한다.

경상감영의 도시청(都試廳)이었다.

관덕당(觀德堂)으로도 불렸다.




 

 

▲ 여기도 추석연휴라

관람을 할수없음에 아쉽다.

 

 

 

▲ 영남대로.

영남대로(嶺南大路)는 조선시대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존재했던

한성에서 동래까지 잇는 간선도로이다.

 

 


 ▲ 신장개업한 김밥집의 축하화환의

메시지가 재미있다..

 

 


▲ 계산성당.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천주교회,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계산오거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이다. 본당의 주보 성인은 루르드의 성당이다.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을 때 주교좌성당으로 결정되었다.

현재 교적상 신자수는 12,000여명이다

 

 


▲ 계산성당 내부모습.

 

 


 

 

 

 

 

 

 

 

 

▲ 계산성당정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 바로 이어지는 청라언덕.

 

 

 

▲ 머리위의 제일교회.

 



▲ 청라언덕.

 

 


 

 

 

 

 

 

 

 

 

 

 

▲ 혼자서도 잘논다... 보채지도 않고



▲ 젊은 아베크족에게 한컷 부탁.

 

 

 

 

 

 

 

 

 

 

▲ 동산병원 구관의 초기정문 모습.

 

 


▲ 은혜정원.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릎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2014년의 추석명절 뒤끝에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골목길투어,,

 

그중에서,,

암울한 우리의 역사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믿음의 힘을 보임으로

이땅의 민초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파한 외국 선교사들과

민족의 선지자들의 발자취를 돌아 보았다.

 

카톨릭이든 개신교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본 골목길 투어에 종교적인 의미는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