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전라도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 자연과 인간이 만든 신비의 불가사의~...

요산요수. 2014. 4. 21. 11:26

 

 

 2014년 04월 20일 : 마이산(680m) : 전남 진안군 마령면.

 

산행코스 : 마이산 북부주차장 - 봉두봉갈림길 - 비룡대 - 고금당(점심) - 금당사 -

탑사 - 은수사 - 북부주차장 하산완료.

행시작  : 북부주차장  : 10 45 도착.   10시 52분 산행시작.

하산완료 : 북부주차장 : 14시 40분 산행완료.

          (3시간 48분 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07 : 48  성서 홈플러스 출발.

10 : 45  마이산 북부주차장 도착.

11 : 05  봉두봉 갈림길.

11 : 43  비룡대.

12 : 18  고금당(점심).

13 : 29  금당사.

13 : 37  탑영제.

13 : 50  탑사.

14 : 20  은수사.

14 : 26  천황재.

14 : 40  북부주차장 하산완료.

17 : 00  출발.

20 : 38  대구도착(반월당 기준).

 

10시 45분 : 마이산 북부주차장 도착.

 

 

 

▲ 스트레칭..발목도 돌리고...무릎도 돌리고. 

 

 

 

산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연두색 새잎이 꽃잎진 자리를 채워가는 4월에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에 행복미소가 가득하고,,

홧팅!~ 소리 드높다..

 



▲ 산행 들머리.

오늘은 산행을 먼저하고 탑사를 가쳐오며

자연과 사람과 서로 느긋하게 교감하는 원점회귀 코스다.

 



▲ 맑은 계류를 따라서..

 

 

 

▲ 바위 사면을 타고 오르면..

 

 

 

▲ 제법 그럴듯한 선녀탕도 보이고..

 

 

 

▲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산수님들의 정겨운 소리에..

 

 

 

▲ 11시 05분 : 봉두봉 탑사 갈림길. 

여기서 보이는 저 계단을 오르면 탑사로 이어지는

"B"코스다.

 

 

 

11시 16분 : 천 갈림길에서 5~6분 진행하면 만나는

두번째 갈림길.. 탑영제로 연결되는 하산길이다.

 

 

 

▲ 비룡대가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 연분홍 철쭉. 

 

 

 

 

 

▲ 삿갓봉 능선.

 

 

 

 

▲ 11시 42분 : 비룡대.

 

 

 

 

 

▲ 비룡대에서 바라본 마이산.

뒷쪽의 뾰죽히 조금보이는 봉우리가 숫마이봉이고

앞쪽이 암마이봉이다.

 

 

 

▲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았다는 뜻의 이름으로.

이밖에 계절마다 각각 다른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봄에는 돗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 되는 것이다.

 

<마이산의 또다른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登天(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
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 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登天(등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 자리에 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 합미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우뚝 선 광대봉.

앞에는 고금당이 보인다.

 

 

 

▲ 당겨본 고금당.

 

 

 

 

▲ 미국 덴버에서 오신 교포.. 

 

 

 

 

 시인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아름다운 연두색 4월의 새싹을 좋아 한다.

계절마다 특색이 있고 아름답지만
만물이 소생 하는 초록의 계절
4월이야말로 희망의 계절이다.

 

 

 

 

 

 

 

 

 

 

▲ 12시 18분 : 고금당(古金塘).

고금당은 옛날 금당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이렇게 부른다.



 

▲ 이곳은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장군 전봉준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 고금당에서 바라본 마이산앞쪽의 암마이봉에 가려 숫마이봉은 보이지 않는다.



 

▲ 나옹암.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였다고 한다.

 

 

 

▲ 입구로 들어 가면..

 

 

 

자연암굴인 나옹암(懶翁庵)이 있다.널따란 암굴에

온통 금빛으로 치장을 하였다. 

 


 

나옹선사(1320~1376)는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고,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승(印度僧) 지공화상으로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당겨본 비룡대.



 

 

 

 

 고금당과 마주 하는 금당사.



 

 

 

▲ 자주괴불주머니.


 

 

▲ 예쁜꽃?,, 노란꽃?.. 양지꽃?..

모르는 꽃.....

아시는분 댓글 부탁 합니다.

 

 

 

 

 

 

 

 

 

▲ 남부주차장에서 탑사로 이어 지는 관광도로.


 

 

금당사는 814년(신라경덕왕 13년)에 혜강대사가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목불 셋과 괘불이 있다.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수도승의 생활은 신선과 같았고

부처님의 높은 도를 깨우친 분이었다고한다.

어느해 늦은 봄이었다.

매우 가뭄이 심하여 사람들은 금당사에서 수도하는스님에게 찾아가 애원하였다.

스님은 정색을 하며 기우제를 드리자고 하고 밤이되자

스님은 호랑이 등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기우제 준비를 마치고 사흘을 기다리니 스님이 절의 뒷마당에

사람을 그리고 그 곳을 백자(百尺)만 파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모두들 주저하였으나 스님의 말대로 파기 시작했고
드디어 백자가되는 땅속에서 부처님이 그려진 한 폭의 괘불이 나왔다.

이 괘불을 절에 걸고 기우제를
올리자 기다리던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가뭄이 심할때면 금당사에서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의 제자 여럿이 스님의 도술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달걀을 개어 떡을 구워놓고 스님에게

살아있는 병아리를 만들어 보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경을 외며 조용히 꿇어 앉아살아 있는 병아리로 만들어 보이었다.

상좌들과 마을사람들은스님의 도술에 크게 탄복하여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이 스님이 바로 공민왕때의 고승 <나옹>스님이다.



 

 

 

 

 

▲ 금당사 대웅전과 고금당이

마주하고 있다. 

 


 

 13시 37분 : 탑영제. 

 


 

 

 

 

 

▲ 13시 50분 : 탑사 입구.


 

 

▲ 5월 6일 석가 탄신일을 맞아

연등행렬과 행락객들로 울긋불긋 화려하다. 

 


 

 

▲ 고국에 계시는 동안 많은걸 알기는 어렵지만,,

눈으로 많이 많이 담아가세요. 



 

▲ 탑사는 태고종단에 속한 불교사찰이지만

독특한 탑들로 인해 도학이나 샤먼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이 돌탑들이 이갑룡 처사 이전부터그 자리에 있었다고도 한다.
이 문제를 놓고 탑사측과 진안군청이 시비를 벌여 지난 98년 법정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탑사의 돌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가사의로 꼽힌다.

평범한 돌을 하나하나 쌓아 다양한 높이의 탑을 만들었다.

신기한 것은 그저 돌을 돌 위에 올려놓았을 뿐인데도

거센 바람까지 이겨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탑사의 수많은 돌탑은

단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 마이산 탑사의 미스터리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100여년 동안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다.

탑들이 위치한 곳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인데

이곳은 유난히 세찬 바람이 부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이 좁은 계곡이어서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채 뽑히지만

이 곳의 돌탑은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 탑사의 대웅전에서..

 

부처님전에

빌고 빌고 또 비나이다..

 

아들딸의 차가운 시신을 부둥켜 안고..

"집에서 나갈때는 그렇게 웃고 나가더니

왜 이렇게 돌아 왔니?"

추웠지?

무서웠지?

엄마가 안아줄께,,,라며

오열하는 유가족 어머니의 애끓는 저소리가 들리시옵니까?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더이상 방황하지 않게

부처님의 도력으로 선체라도 빨리 인양되게 힘을 주시옵고..

 

그리고,,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꺼지지 않게 기적을 주시옵소서~~

 


 

 

 

 

▲ 탑 축조자 이갑룡 처사 존영.

 

 

▲ 마이산 탑사의 돌탑들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 처사(1860-1957)가 30여년 동안 쌓아올린 것이다.

1860년에 전주 이씨 효령대군 16대손으로 태어난 그는

16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19세때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5세 때 마이산에서 유, 불, 선에 바탕을 두고 용화세계의
실현을 위해 수도에 들어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마이산의 돌탑일 것이다.

 

 

 

 

 

 

 

 

 

▲ 자목련..은수사.. 숫마이봉..

 

은수사(銀水寺)는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때

물이 너무 맑아서 은수사라 지었다고 한다.

 

 

 

▲ 금낭화.

관상용으로 많이 심음. 봄에 어린 잎을 채취하여 삶아서 나물로 쓰기도 하며,

한방에선 전초를 말린 것을 금낭이라고 하며,타박상,종기 등의 치료에 쓴다.

 

 <금낭화 전설>

시집살이가 험악한 어느 산골 마을의 며느리가 밥을 다 푸고선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주걱에 묻은 밥풀 몇알을 떼먹고 있다가
그만 험악한 시어머니에게 들켜서 저혼자 밥을 다 처먹는다며
작대기로 모질게 얻어맞아 죽은 뒤,
이듬해에 집 뒷 장독대에 핀 꽃이 금낭화...

여자의 새빨간 입술에 흰 밥알을 문듯한 모습이

그 며느리의 한을 상징한다고 한다.....

 

 

 

▲ 은수사 청실배나무.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청실배나무에 배꽃이 활짝 피었다.



 

▲ 마이산 은수사 큰북.

 

누구나 언제던지 칠수가 있으며

소원을 빌면서 3번을 치면 이루어 진다고 한다.

 

 

 

▲ 숫마이봉..

 

투구를 닮은것 같기도 하고

코끼리 같기도 하고..

 

 

 

▲ 천왕재 오름길.

 

 


▲ 14시 26분 : 천황재.

 

 

 

▲ 지하 150m 암반수,,

달고 시원하다.

 

 


▲ 북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길.

 

 

 

▲ 14시 40분 : 북부주차장 하산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