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경상도

추억속의 반쪽 앨범이 완성되어진..경남 창녕 구룡산 종주 / 우포늪 ~..

요산요수. 2013. 9. 22. 20:30

 

 

2013년 09월 22일 : 구룡산(741m) / 관룡산(754m)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산행코스옥천리차장 - 관룡사 - 암릉 - 구룡산 - 청룡암갈림길 - 관룡산 - 

          용선대 - 관룡사 - 옥천리 주차산완료.

행시작 : 옥천리주차장 : 08시 45분 도착.

하산완료 : 옥천리주차장 : 13시 54분(5시간 9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7 : 32  성서 홈플러스 출발.

08 : 45  창녕 옥천리주차장 산행들머리 도.

09 : 14  관룡사.

09 : 48  암릉.

10 : 40  구룡산 정상.   

11 : 00  청룡암 갈림길. 

11 : 23  관룡산 정상(점심).

12 : 34  용선대 석불.

13 : 02  관룡사.

13 : 54  옥천리 주차장 하산완료.

15 : 33  하산주후 우포늪 출발.

16 : 19  우포늪 주차장 도착(우포늪 관람).

17 : 42  출발.

18 : 48  대구도착 (법원 기준).

 

 

▲ 현풍휴게소 지킴이 500년 느티나무. 

현풍휴게소를 수도 없이 다녔지만 여태껏 알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08시 45분 : 옥천리 주차장 도착.

 

 

▲ 옥천사지(玉泉寺址). 

옥천사는 비운의 개혁가 신돈이 태어나고 출가했다는 곳이며. 절의 규모가 매우 컸다고 한다.

신돈(辛旽) : 고려 말기의 승려(?~1371). 자는 요공(耀空). 호는 청한거사(淸閑居士). 신돈의 아버지는

알수 없어나 어머니는 옥천사 노비였다.

그후, 공민왕에게 등용되어 국정을 장악하고, 전제 개혁(田制改革)과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았던 토지를

돌려주고노비를 해방시키는 개혁 정책을 폈으나,모든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이라,,,,.

상층 계급의 반발로 결국 묘청(妙淸)과 함께 요승(妖僧)으로 몰려 역모죄로 처형을 당했고 그가 태어난

장소이자 어머니가 노비로 있었던 옥천사도같이 폐사가 되고 지금은 석재들만 말없이 뒹굴고 있다.

 

  

▲ 매점이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관룡사를 따른다. 

 

   

 

▲ 관룡사 입구의 석장승.

사찰소유의 경계표지 역활을 하며. 절에 사악한 기운이 출입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한 사례로

왼쪽이 남 장승이고,, 오른쪽이 여 장승이다.

 

   

▲ 09시 10분 : 관룡사 입구.

관룡사는 구룡산 관룡산 산행후 하산길에 들러 보기로 한다.

 

  

▲ 좌측 바위위에 용선대 석불이 보인다. 

 

 

▲ 관룡사에서 구룡산쪽 들머리에 있는 사리탑.

 

 

▲ 또 하나의 부도탑이 외진곳에 있다.

관룡사에는 모두 7개의 부도가 있다고 하는데..

아래 기단에는 월하당 태사(月河堂 太師) 라는 글귀가 보인다.

 

 

▲ 마른계곡을 서너번 지나 가파른 능선을 올라 탁트인 전망대에 서니..

청룡암 뒤편으로 구룡산 병풍바위가 그림이다. 

 

 

▲ 내려다 본 관룡사.

 

 

  

▲ 구룡산 주능선의 암릉이 용의 등줄기 갈퀴처럼 예사롭지 않다.

 

 

 

 

 

 

▲ 바위사이를 비집고 올라서니 수십길 절벽위의 전망대. 아찔한 만큼 경치도 빼어나다. 

 

 

 

 

 

▲ 첫번째 암봉에 올라서니.

 

 

▲ 천길단애 건너로 가야할 구룡산 암릉이 이어 진다.

 

 

 

▲ 천길단애를 조심스레 내려 온다.

 

 

 

▲ 대협곡..

 

 

 

 

 

▲ 지나온 첫번째 암봉,

 

 

▲ 두번째 암봉,

 

 

 

 

 

 

▲ 팥배나무. 

열매가 붉은 팥알같이 생겨서 팥배나무라고 부르고. 관상용으로 심으며 나무껍질은 염료로도 쓴다. ..

 

 

 

 

  

▲ 구룡산에도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 10시 40분 : 구룡산 정상.

 

 

 

▲ 구룡산에서 관룡사로 이어지는 철쭉군락지.

 

 

 

  

 

   

 

 

▲ 위에서 본 청룡암. 

과거 청룡암을 찾았을때는 다 쓰러져 가는 페허 였었는데..

중창불사를 하였는가 보다. 사립문 밖에 있던 물맛 좋은 샘이 생각 난다.

 

 

 

  

 

  

 

 

 

 

 

 

 

 

 

 

 

 

  

  

 

 

 

 

  

 

 

▲ 용선대 오름길..

 

 

 

▲ 스님 한분이 먼산을 보며 명상에 잠기셨는지..달마가 왜 동쪽으로 간 의미를 찾으심인가..

 

 

▲ 입구의 바위에 목조 구조물이 있었던 홈,, 무슨 용도 였을까..

 

 

▲ 용선대에서 바라 본 구룡산.

 

 

▲ 관룡사 용선대 석불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 앞에는 석등이 있었던 듯...

 

 

 

석굴암의 본존과 같은 양식으로 조성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불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용선대에서 서북쪽에는 화왕산과 배바위가 보인다.

 

 

▲ 정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 싸리꽃..

 

 

▲ 관룡사 전경.

 

 

 

 

 

▲ 원음각.

불지광대동허공(佛智廣大同虛空)부처님의 지혜는 허공과 같이 광대하여보변일체중생심(普遍一切眾生心)

중생들의 마음에 두루하시고일념실지삼세법(一念悉知三世法) 한 생각에 삼세의 법을 모두 아시고

력료일체중생근(亦了一切衆生근) 일체중생의 고뇌도 모두 통달 하셨네..

 

  

▲ 관룡사 대웅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찰로서 〈사기 寺記〉에

의하면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기도를 드릴 때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 화왕산(火旺山)으로부터 9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구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 약사전(보물 146호).

평해 군수 <신유한>이 1733년 정월에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찾은관룡사에서 명학스님에게 들은

내용을 작성한 ‘관룡사 사적기(경남 지방유형문화재 제183호)’ 이야기다.

임진년인 1592년, 일본은 조선을 피로 물들였다.당시 관룡사도 전란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은 불을 질렀고, 관룡사는 잿더미로 변했다.민초들은 1610년, 관룡사 스님들과 옛터를 정돈해

선당 몇 칸 세워 관룡사 명맥을 지켰다.몇 년 뒤 영운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탄식했다.

“이상하도다. 이 절이 화재를 입은 것은 깃털 하나가 화로 속에서 재가 되는 것과

같아 수습할 길이 없는데, 유독 약사전 하나만 아무 피해를 입지 않고

처마 끝에 불길이 살짝 닿았던 흔적만 있구나.

약사전에 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길이 해독을 입지 않고 막아내 홀로 재앙을 면했구나.”민초들은 기뻤다.

옛 모습대로 관룡사를 수리하기로 했는데, 약사전 대들보에서 먹으로 쓴 여섯 글자를 발견했다.

‘永和五年己酉(영화5년기유)’. 영화는 중국 동진 목제의 첫 번째 연호다.

345년에서 356년까지 사용한 연호다.

영화 5년은 349년이니, 무려 1664년 전에 약사전이 지어진 셈이다. 

이것은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했던 527년보다

무려 178년이나 빠르며,,, 또한 <순도>스님이

고구려에 불상과 경문을 가지고 들어온

372년(소수림왕 2년)보다 23년 전이다. 

그래서 창녕이 가야불교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 관룡사 사천왕문을 나서니..

 

 

 ▲ 구룡산을 배경으로 추색이 들고,,

  

 

 

▲ 텃밭에는 전기없는 물의 압력을 이용한스프링쿨러가 절집의 공양물을 키운다.

 

  

  

▲ 관룡사 중창불사 공덕비.

 

  

▲ 안에서 본 석문,,

 

 

▲ 밖에서 본 석문,,

 

 

 13시 54분 : 옥천리 주차장 하산완료.

 

 

 산은 멀리서 보라 했던가.. 아름다운 구룡산.

 

 

 고마리(일명 그만이 풀).

어린풀은 먹고, 줄기와 잎은 지혈제로 사용한다. 

수질을 정화시켜주는 풀이라서 '고마우이'에서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과 슾지나 물가,

어디에서나 잘 자라 번식력이 좋으므로, 제거가 쉽지 않아 그만 자라라는 뜻으로

'그만이풀'이라 불리다가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 부들..

어릴때 장난감으로도 가지고 놀던 기억이 있다.

잎은 방석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며, 꽃가루를 포항이라 하여

지혈(), 통경(), 이뇨제(尿)로 약용한다. 

부들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잎이 부드럽기 때문에

부들부들하다고 부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억새.. 

가까이 있기에 외면한 산..

추석 명절을 맞아 다시 찾은 구룡산은 오래된 반쪽 추억에서

오늘에야 추억속의 앨범이 완성되어 진다.

 

집으로 가는길에 창령 '우포늪' 관람.

 

 

 

 

 

 

 

 

 

 

 

 

 

 

 

 

 

 

 

 

 

 

 

 

 

 

 

 

 

 

 

 

  우포늪 지킴이 <주영학>님의 모형.

1997년 IMF때 대구에서 하던일을 접고 고향에 왔다가우연한 기회에 낙동강유역 환경청 환경 감시원이 되었고

현재까지 10년 넘게 우포늪을 지키시는 분이다.

 

 

 

가시연꽃.

씨를 한방에선 감실이라 하는데 강장제로 사용하며뿌리는 감인근, 잎은 감인엽이라 하여 약용하며

뿌리줄기는 식용으로 이용한다.지금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분류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채취,훼손,고사시엔 법에 의해 3년이하의 징역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