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경상도

경남 남해 금산~,,

요산요수. 2012. 11. 19. 13:35

 

 

2012년 11월 18일 금산(705m)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산행코스 : 금산탐방지원쎈타주차장 - 거북이식수대 - 쌍홍문 - 해수관음상 - 보리암 - 선은전(점심) - 

          기념품판매점 - 금산 정상 - 문장암 - 단군성전 - 헬기장 - 부소암 - 상사바위 - 좌선대 -

          금산산장 - 흔들바위 - 제석봉 - 쌍홍문 - 탐방지원쎈타 주차장 하산완료 

행시작 : 경남 남해군 이동면 금산탐방지원쎈타 주차장 10시 55분.

하산완료 : 경남 남해군 이동면 금산탐방지원쎈타 주차장 15시 17분

          (4시간 23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10 : 55  금산탐방지원센타주차장 산행들머리 도착.

11 : 23  거북이 식수대.

11 : 47  쌍홍문.

12 : 04  해수관음상.

12 : 13  보리암.

12 : 19  선은전(점심).

13 : 07  금산정상.

13 : 25  단군성전.

13 : 39  부소암.

13 : 59  상사바위

14 : 25  금산산장.

14 : 35  쌍홍문.

15 : 17  금산탐방지원쎈타 주차장 하산완료.

15 : 32  하산주 장소 출발.

15 : 38  하산주장소(대중식당) 도착.

16 : 50  출발.

21 : 30  대구도착(법원 기준).

 

 

10시 55분 : 금산탐방지원쎈타 도착.

 

 

▲ 좌측으로 들머리가 있다.

 

 

▲ 예사롭지 않은 금산의 암릉,,

우람한 상사바위가 위용을 드러내고 어서 올라오라며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 금산탐방지원센타,, 

 

 

▲ 좌측의 기념품가게를 지나 올라간다. 

 

 

▲ 자연관찰로 입구. 

 

 

 

▲ 등산로 정비를 아주 잘해 놓았다,,

특히 눈에 띄는것은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을 보호기 위해서 축대를 쌓은

모습에서 자연 사랑의 노력이 돋보인다.관계당국의 세심한 배려에 박수를 보낸다,, 

 

 

11시 23분 : 거북이 식수대.. 

1982년 12월에 한려해상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한글로 썼더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은 수질악화로 음용수로는 적합치 않다고 한다.. 

 

 

 

▲ 바닷가의 산들이 그렇듯이 낮지만 곧장 오름길이라..가파른 계단길을 치고오를때 쯤이면..

기암들이 산꾼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묘하게 얹혀 있는 붉은 선 안의 바위를 당겨 보니.. 

 

 

▲ 손바닥 같은 바위가 정겹다.. 

 

 

▲ 금산 16경,, 사선대(四仙臺) 

쌍홍문에서 바로 아래 오른쪽에 서 있는 네 사람 모습으로 생긴 바위.

옛날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는 전설에 따라 사선대라고 한다. 

 

 

11시 47분 : 금산 15경,, <쌍홍문>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이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 금산 15경,, <쌍홍문> 쌍무지개 문,,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 금산 6경,, <만장대> 

탑대 서남쪽 깎아 세운 듯 천인 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홍문의 오른쪽에 있다. 

 

 

 

 

▲ 쌍홍문 안에서 밖을 내다본 모습,, 

 

 

▲ 쌍홍문 내부. 

 

 

▲ 나란히 세개가 똟려있는 구멍에 돌을 던져서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다.. 

 

 

▲ 금산 11경,, <음성굴>과 <용굴>. 

만장대 바로 북쪽, 높이 2m, 길이 5m 정도 되는 조그만 바위굴.

 굴 속에 들어가 굴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음성굴(音聲窟)이라 했다. 

<용굴>은,,,

음성굴 오른편에 50m의 길고 넓은 굴이 있는데 옛날 용이 살다가

하늘에 올라갔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굴이다. 

 

 

 

▲ 영가천도 소각장. 

 

 

 

 

 

 

▲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산에 올라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면 산 전체에 비단을 둘러주겠노라,,하였다는 산,,, 금산..

 

 

▲ 금산 27경,,, <상사바위> 

웅장한 바위도 볼거리지만 바위 위에서 보는 남해 다도해의 풍광은 천하일품이다. 

주인 딸을 사랑하다 죽은 슬픈 사랑이야기,

과수댁이 총각의 상사를 풀어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 탑대에서 바라본 <금산 34경 제석봉>과 <금산 8경 일월봉> 

 

 

 

▲ 천하(天下)를 장악(掌握)하려는 큰 뜻을 품은 태조 이성계는

전국(全國) 명산(名山)을 찾아 산신기도(山神祈禱)를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금산 산신(錦山山神)이 호응(呼應)하여 

등극(登極)하게 되자 영구불망(永久不忘)의 명산(名山)이라 하여 보은(報恩)의 뜻으로 보광산(普光山)을

금산(錦山)으로 개칭(改稱)게 하였다고 전(傳)한다. 

 

 

12시 02분 : 해수관음상. 

 

 

▲ 해수관음상 뒤로 보이는 바위는 <화엄봉>이고 우측은<대장봉>이디..

   

 

 

▲ 금산 17경 : 보리암 삼층석탑.

천인단애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는 탑이 있어서 이 절벅을 탑대라 한다.. 

 

 

▲ <대장봉>과 <보리암>을 배경으로

남해를 바라보고 계시는 해수관음상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는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대자대비의 은혜일 것이다. 

 

 

▲ 금산 8경,,, <일월봉>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 상주해수욕장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12시 13분 : 보리암.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막을 짓고 수도하던중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라 하였는데 이것이 보리암의 전신이라고 한다. 

보리(菩提)는

불교에서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한수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 보리암 마당에서 아래로 약 200m의 거리에 있는 이성계가 기도하였다는 선은전으로 가본다. 

 

 

12시 20분 : <선은전> 

선은전(璿恩殿)은 태조 이성계가 선유제(임금이 되기를 비는 제사)를 지낸 곳이다. 

 

 

▲ 대한중흥송덕축 성비.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는 대한을 중흥한 고종 황제의 공적이

조선 왕조 개국조인 태조의 공적에 비길 수 있음을 칭송하여

성군이 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금산 33경,,, <삼불암> 

 

 

▲ <삼불암>을 당겨보면.. 

조선태조기단 왼쪽 깎아지른 높은 곳에 바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있는데,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의 좌상같다고 해서 삼불암이라고 한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두 개의 바위가 모두

일어나 앉았다. 만약 세 개 모두 일어났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이다. 

 

 

 

 

 

▲ 참나무에 기생하는 난초류,, 

 

 

▲ <이씨기단>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 남해금산령응기적비..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百日祈禱)를 하던 중

산신(山神)의 영험(靈驗)에 의하여 보위(寶位)에 오르셨다는 전설(傳設)이 깃든 유적(遺蹟)이다. 

이 비석(碑石)은 광무 7년(1903) 5월 11일에 그 유적(遺蹟)을 기념(記念)하기 위하여

종일품(從一品)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윤정구(尹定求)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글을 짓고 써 건립하였다. 

 

 

12시 32분 : 전망대 점심,, 

 

 

▲ 왼쪽으로는 보리암이요,, 

 

 

▲ 오른쪽으로 <선은전>이 보이는 멋진 전망대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 만장대 위에 세워진 <탑대>와 <보리암>.. 

 

 

▲ 다시 <보리암>을 거쳐 금산 정상으로,,, 

 

 

▲ 12시 58분 : 기념품판매점, 

 

 

▲ 금산 정상 방향을 잡는다.. 

 

 

▲ <대장봉>과 허리굽혀 절하는 모습의 <형리암> 형리암은 금산 13경이다,,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있으며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으로 생겨 형리(刑吏)바위라고 한다. 

보리암에서 처음 보는 사람은 바위가 곧 떨어질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허리 굽힌 모습으로 보인다. 

 

 

▲ 금산 정상 오름길에는 여름과 가을과 봄이 공존하고 있다.. 

 

 

▲ 정상이 가까워 지는 모양이다..

 

 

▲ 13시 06분 : 금산 정상석,,

 

 

▲ 금산 제 1경,,, <망대>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서도 더더욱 뗄래야 뗄수없는 왜적의 노략질에..

수많은 애환과 사연이 묻어있을 <망대>의 전설에..어린 남매가 한가롭다..

 

 

▲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모습,,

 

 

▲ 금산 30경,,, <천구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 유홍문(由虹門) 상금산(上錦山) 

한림학사 주세봉((周世鵬)선생의 글씨로. 쌍홍문을 거쳐 금산에 오르다...라는 내용이다..

 

 

▲ 금산 5경,,, <문장암>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일명 <명필바위>라고도 한다.

 

 

▲ 문장암.

 

 

 

▲ 금산 2경,,, <천마암> 

망대 아래 동쪽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이성계가 기도하고 있을 무렵에는 회두암(回頭岩) 이라 불렀다고 한다.

 

 

 

▲ 또다른 금산 정상석,, 높이가 681m로 되어 있다.. 

 

 

 

 

 

 

▲ 단군성전 가는길,,

 

 

 13시 24분 : 단군성전.. 

우리 역사의 구심인 단군을 외면하고 퇴색 되어 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지만 단군성전으로서

역활을 꿋꿋이 지켜 나가고 있는 곳이다.

 

 

  

 

 

 

 부소암 가는 길,,왕복 약30분 소요..

 

 

 13시 39분 : 금산 34경,,, <부소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 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법왕대라고도 한다.

 

 

 

 아치형 철제다리를 건너서,,

 

 

 전체 모습이 마치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 

진시황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덩한 <호해>가 그 두 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다.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가'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고. 신령스런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

역사에서 부소는 진시황이 보낸 사약을 받고 변방에서 죽고,

둘째 아들 호해가 임금 자리를 계승하였다.

호해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사립문을 지나서..

 

 

 이곳이 부소암인듯 하다,,

인기척이 없는걸 보니,, 어디 출타라도 하였는지,,너무나 조용하다, 

 

 

 

 부소암 마애불. 태극무늬가 독특하다..

 

 

 다시 한참을 내려온 능선으로 올라가면서 본 금산 정상,,,

 

 

 여기는 아직도 가을에 머물러 있다..

 

 

 보리암과 기암..

 

 

 금산 12경,,, <향로봉> 

삼사기단 왼편에 있으며 마치 향로와 같다고 해서 향로봉이라

부르며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촉대와 함께 향로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상사바위 가는길..

 

 

 

 금산 23경,,, <팔선대>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덟 개의 바위. 서 있는 모습이 여덟 신선들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한다.

 

 

 금산 31경,,, <구정암>

상사암에 구정암이 있다.상사암에 이어진 바위에 아홉 개의

확(홈)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 개의 샘처럼 보인다 

숙종 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 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하고 감탄했다.

 

 

 다시 보아도 절경이다.. 

 

 

 

 금산 3경,,, <삼사기단>, 

좌선대 아래쪽에 있다.

유명한 세분의 큰 스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기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고 해서 삼사기단이다.

삼사(三師)가 앉았던 자리가 바위 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금산 <석문> 

부처님의 도량,,보리암으로 가는 하늘문이련가.. 

 

 

 금산 11경,,, <촉대바위>, 

향로봉 옆에 있는 촛대 모양의 작은 바위. 원효, 의상, 윤필

세분의 대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다.

 

 

 뒤에서 본 석문 모습,.

참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금산 37경,,, <좌선대>, 

좌선대는 원효대사 등 고승들이 수도좌선(修道坐禪)했다는 장소.

실제로 바위 윗부분은 가부좌한 자세로 앉은 사람이 쏙 들어 갈 만큼 파여 있다. 

바위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산과 하늘과 내가 하나 되는

기분을 느낄수 있어 시도해볼 만하다.

 

 

 일월봉위의 바위가 마치 황소가 걸어가는 것 같다..

 

 

 뒤에서 본 <좌선대>,

 

 

 

 14시 25분 : 금산산장,,

 

 

 금산 33경,,, <흔들바위>, 밀어보니 끄떡도 하지 않는다..

 

 

 제석봉에서본 <석문>과 <좌선대>

 

 

 

 아래에서 본 일월봉..

 

 

 금산 9경,,, <대장봉>과 <형리암>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14시 35분 : 쌍홍문 뒤쪽.. 

 

 

 

 <장군암>과 <송악> 

 

 

  

 

 

 

 

 15시 37분 : 금산탐방지원센타 주차장 하산완료. 

 

 

 

 15시 38분 : 하산주장소인 대중식당(상주면소재지).. 

 

 

 

 

 치자나무.. 

 

 

 지는 노을에 불타는 단풍이 아름답다..

 

 

 거북선을 형상화한 화장실. 

 

 

 천혜의 절승,,, 이곳 금산에서.잠시나마 이곳에 

세파에 찌든 마음도 갈아 앉히고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에

그을린 몸도 내려놓고 

황홀했던 마음으로

지는 노을속에 오늘 하루를 내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