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옥녀봉~국사봉~~
2011년 12월 04일 옥녀봉(555m) / 국사봉(462m) : 경남 거제시 신현읍.
산행코스 : 관송버스정류장 - 마전고개 - 봉수대 - 옥녀봉 - 419봉(점심) - 국사봉 -
수월재 - 약수암 - 대우아파트 하산완료.
산행시작 : 거제시 아양동 관송 버스 정류장 10시 40분 도착.
하산완료 : 거제시 옥포 대우아파트 골프연습장 15시 24분(4시간 44분소요 : 점심 및 휴식시간포함).
08 : 07 성북교 출발.
10 : 40 거제시 아양동 관송버스정류장 산행들머리 도착.
10 : 56 마전고개.
10 : 58 봉수대.
12 : 01 옥녀봉 정상.
13 : 02 419봉.(점심 및 휴식).
14 : 47 국사봉 정상.
15 : 06 수월재.
15 : 24 옥포 대우아파트 골프연습장 도착 하산완료.
15 : 30 하산주.
15 : 43 출발.
17 : 33 성북교 도착.
▲ 옥포 대우조선 정문을 조금 지나서 관송버스정류장 도착.
산행들머리인 옥녀봉 안내판 확인 하고..
▲ 봉수대 안내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시멘트 임도를 따라 갑니다.
▲ 임도에서 본 옥포만의 대우조선.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삼각형 다리가 거가대교 입니다.
▲ 마전고개.
왼쪽의 봉수대를 다녀 옵니다..
▲ 좌측의 뾰죽한 봉우리가 하산지점인 국사봉,,
▲ 봉수대
조선 전기인 15세기 무렵 왜구를 감시할 목적으로 설치 되었어며.
옥포만의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 역활을 하던 곳 입니다.
▲ '거제(巨濟)'란 신라 경덕왕때 부터 부른 이름으로서'클 거(巨)' 자는 거제도가 '큰섬'임을 뜻합니다.
'거제'의 '제(濟)'를 '건질 제'로 풀이하여 크게(많은 사람을) 구(救)하는 섬이라 하는데,
옛부터 '거제 계룡산하 구백만(巨濟 鷄龍山下 救百萬)'이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그 예로서 첫째는 6·25 이후 거제에 수용된 10만명의 포로가 이 섬으로 와서 구제된 것이며,
둘째는 1·4 후퇴때 20만명의 피난민이 거제도로 들어와 구제되었고,세번째는 산업화에 따라 대우조선소와
삼성중공업조선소가 거제도에 세워져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리를 거둔 옥포만에 한가로히 떠 있는 배들,,
한바다 외로운 섬 옥포야.
작은 마을 고난의 역사 위에 네 이름 빛나도다.
우리 님 첫번 승첩이 바로 여기더니라.
창파 구비 구비 나르는 저 갈매기
승전고 북소리에 상기도 춤을 추니
우리도 자손 만대에 님(충무공)을 기리오리다.
- 이은상님의 시 -
'옥포대첩'은 거제(巨濟)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이미 임진왜란 때 이 나라를 또 한번
'크게 구한곳(거제)'임을 일깨워 주는듯 합니다.
▲ 오름길 전망대에서 본,, 일운면의 구조라 해수욕장.
▲ 첫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우조선과 옥포만.
우측의 희미하게 길게 누운 섬이 가덕도 입니다.
▲ 옥녀봉 삼각점
옥녀봉 삼각점은 대한민국 최초로 설치된 대삼각점으로1910년 6월 <일본 대마도의 유명산>과
<부산의 영도 봉래산>과<거제의 옥녀봉>을 관측계산하여 대삼각본점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두 삼각점을 기준으로하여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토지조사를 실시하였던 매우 중요한 삼각점
입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려는 의도에서시행된 것 이었기에 씁쓸한 기분입니다.
그러나,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시설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우리 민족과 땅의 의미,,,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땅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땅은 어머니요,
인간 생활의 근본 터전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우리는 한 순간도 땅을 벗어나 살 수 없으며,
우리의 일상 생활은 갖가지 모습으로 땅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국토의 개념에서 살펴본 바대로 국토는 비단 물질적인 개념의 땅과 하늘, 바다만은 의미하지 않고,
인간이 그 안에서 이루는 역사, 문화, 산업 등을 포함한. 우리가 국토를 소중하게 보존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입니다.
▲ 옥녀봉 유래는...
옛날 옥황선녀가 살았는데 옥구슬을 가지고 놀다 옥구슬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인간으로 변하여 산속으로 헤매다가 사냥꾼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
한 선비가 그 선녀를 구해 주었다.
그래서 옥황선녀가 선비에게 금덩이를 하나 주었다.그러나 선비는 받지 않고 그냥 갔다.
선녀는 옥구슬을 찾아 하늘나라로 갔다.그런데, 산속에서 구해준 선비가 와 있었다.
선녀가 옥황상제에게“저기 있는 선비는 저를 구해 준 선비이옵니다.” 라고 말했다.
옥황상제는 생각을 하다가 선비를 이승으로 보내라 하였다.선비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서 선녀가
함정에 빠졌던 산을<옥녀봉>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 옥녀봉 정상에서 다시한번 내려다 본.. 해양 강국의 현장 옥포만과 대우조선..
▲ <옥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지만..
발아래,, 지금의 옥포만에는 그 옛날 이순신 장군이 옥포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함성에
화답이라도 하는듯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해신 장보고>의 후예들이 일궈낸
미래의 해양강국을 향한 열정의 망치소리에 마음 든든함을 느낍니다.
▲ 옥녀봉 정상을 내려오면서..뒤돌아 보니,,
시공을 뛰어 넘는 스쳐가는 인연의 아쉬움인가..
언젠가는,,,
이승의 생을 다 하고,, 걸림없는 한줄기 산바람 되어 다시 찾아 오리니..
잠간 내려두고 가는 내 마음을... <옥녀>에게 꼭 전해 달라고,,
정상석에 무언의 눈 맞춤하고 돌아 섭니다..
▲ 거제지맥이 갈라지는 삼거리,,
▲ 너무나 걷기좋은 낙엽길을 따라 걷노라면,,,..
▲ 명재쉼터(명치 : 울음 재)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남매의 애잔한 전설이 있으니.. 그 옛날 두 남매가 이 고개를 넘다가 소나기를 만났는데,
비에 젖은 누나의 몸매에 흥분한 동생이 무례한 짓을 한 후 이를 자책해서 돌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찍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 고개를 일명,, '울음이재' 라고도 부르는 것은 누나의 슬픈 울음에서 따온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 집니다..
쉼터에서 담소를 나누는 저 산객들은.. 이 곳 명치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 국사봉 오름길에는,, 뱀을 잡기위해..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놓은 그물망이 흉물 스럽네요..
그물을 쳐놓으면 뱀도 문제지만 작은 동물들의 왕래를 막아서 생태계의 먹이 사슬도 흐트러 집니다..
▲ 국사봉 장군대..
▲ 국사봉은
조정의 신하가 조복을 입고 조아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며.
임진왜란 때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던 망산 역할을 했던 국사봉은
장군의 망대라 하여 장관대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 작은 국사봉 너머로 거제 시청이 있는 거제시 신현읍.
▲ 거제시민들의 휴식 공간 답게,, 곳곳에 정자라던지.. 벤치..체육시설,,,등을 잘해 놓았네요..
▲ 수월재..
여기서 대우아파트로 하산합니다..
▲ 일반 여염집 같기도 한 약수암을 지니고.
▲ 골프연습장이 보이고..
▲ 하산 완료.
▲ 남도에는 아직도 고운 단풍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거리의 가로수 은행나무도 곱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2011년의 소나무산악회 송년산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 집니다.
1년간 수고해 주신 회장님, 산대장님, 사무국장님,, 임원님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며 웃고 즐겼던 회원님들 즐겁고 행복 했습니다..
내년 2012년에도 회원님들 가정에 행운이 항상 깃드시고,,
언제까지나 안산즐산 함께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