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 2011년 산신제 뒤풀이<1> - 낙안읍셩에서~~
▲ 낙안 읍성 입구,,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 매표소.
▲ 낙안 읍성 축성의 전설..
낙안읍성은 조선조 태조 6년 낙안 출신 의병장인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으로 쌓았다.
그후 인조 4년(1626∼1628)임경업 군수가 낙안 군수로 재직하면서
지금의 석성으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임경업 군수가 하루밤 만에 쌓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임경업 군수한테는 누나가 한 분 계셨는데
성곽을 쌓는 것을 누나가 돕기위해 내기를 하였다.
임경업 군수가 성곽을 쌓는 동안에 누나는
병사들이 입을 옷을 만들기였는데
누가 더 빨리 하는가 하는 내기였다고 한다.
누나는 봄에 목화를 심고 가꾸어 수확을 하여
당시 2,000 여명이나 되는 군사들의 군복을 만들고
임경업 군수는 병사와 주민들을 동원하여 성곽을 쌓는데
누나가 옷을 다지어 놓고 나서 성곽을 보니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었다고 하였다.
▲ 그러자 누나가 생각하기를
일개 아녀자가 일국의 장수를 이긴다는 것도 그렇고
특히 수많은 병사들의 사기가 내려갈까 염려가 되는지라
다지어 놓은 군복 중에 한 벌의 옷고름을 짤라 놓고서
성곽이 다 쌓아 지기를 기다렸다가 동생이 성곽을 모두 쌓은 후에
옷고름을 다시 달아 일부러 져주었다고 한다.
▲ 이것을 모르는 병사들은 기뻐 환호하고 사기는 충천하였으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여겼다고 한다.
동생과 군사들의 사기를 위해서 동생에게 승리를 안겨준
아름다운 누나의 모습 이야말로 전통적인 우리 여인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 읍성 안에는 현재85세대 229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 네이놈 ,, 어서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 하이고~~ 나리나리 사또나리~~
나~가요,, 열심히 착하게 산죄 밖에 없는디~~
우째 이리도 핍박을 해샀소~이~~
▲ 기미 독립 운동 기념탑이 있네요.
▲ 오늘같이 비오는날이면 저렇게 비옷을 쓰고 들에 나갔지요,,
▲ 대장금 촬영장소,,
몇년전에 왔을때는 탈렌트 이영애의 실물 크기 모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요,,
▲ 남도 명창 안숙선님도 여기 출신이군요,,
▲ 이한호라는 분 이 살고계신다는 가옥 표시네요..
▲ 229명의 주민이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 죄인을 호송하던 수레..
▲ 옥사 입구.
▲ 쇠창살이 아닌 목창살이지만,,,
그래도 보기엔 섬뜩하네요..
▲ 네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추상같은 사또나리의 불호령이 들리는 듯 합니다..
▲ 돌담길이 졍겨워 보입니다..
▲ 들어 올때도 반겨주던 장승이
나갈때에도,,잘가라~ 인사를 하네요..